희망제작소를 향한 단골 질문은 "희망제작소는 뭐 하는 곳인가요?" 그 답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려는 실험을 이어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희망제작소가 내년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그 긴 세월 동안 주체(시민), 문제, 해결, 정책 등의 모양이 각양각색 변화했습니다.
그래도 단박에 뭐 하는 곳인지 이해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희망제작소가 꾸준히 주목해온 것을 소개합니다. 불편을 말하면 민원이 되고, 해결을 요구하면 정책화 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변화는 더디고, 문제는 반복됩니다. 대부분 이런 현실을 그러려니 받아들이지만, 누군가는 그 틈을 넘어서곤 합니다.
희망제작소는 2006년 창립 때부터 그들을 지켜봐 왔습니다.
- 일상의 언저리에서 시작된 질문을 행동으로 옮기는 시민들.
- 누구의 요청이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제를 자기 손으로 바꾸는 사람들.
- 일상에서 마주한 문제를 삶의 일부로 여기고 일과 직업으로 연결해가는 이들.
우리는 그들을 ‘소셜디자이너’라 불러왔습니다.
최근 우리는 새로운 소셜디자이너의 탄생을 경험했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석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현장의 언어로 설계하고, 누구보다 정교하게 풀어가는 이들을 말입니다. 뚜렷한 조직도 안정된 자원도 없지만, 이를 장점 삼아 행정과 제도, 공공과 시장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처음엔 낯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새로운 세계가, 바로 이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는 그들을 '소셜디자이너'라는 세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 소셜디자이너의 재발견
지난 3년 동안 희망제작소가 만나온 소셜디자이너들은, 별난 선택을 자신 있게 하는 ‘문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의 작은 불편함과 문제를 발견하고, 직접 문제 해결에 도전하며, 결국 구조를 바꿔내기 때문입니다.

최정원(청춘연구소), 김만이(초록코끼리), 김인호(삼삼은구), 김가현(스튜디오어중간) 사진 좌측부터.
소셜디자이너 최정원(청춘연구소)은 대학 시절, 또래 청년들의 진로 고민과 지역 활동에 참여하며 ‘청년은 왜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단순히 머무르는 것을 넘어, 지역에서 스스로 삶을 설계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했고, 커뮤니티와 진로 교육을 연결하는 모델을 구상했습니다. 부산에서 청년과 주민이 함께 일상을 나누는 ‘청년마루’를 운영하게 되었고 단순한 취업이 아닌 ‘로컬 커리어 설계’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앙 중심의 훈련-취업 연계 정책과 달리, 청년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지역 변화의 주체로 세우려는 시도입니다.
소셜디자이너 김만이(초록코끼리)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촌 관련 국책연구소에서 일하던 중, 현실을 직접 경험할 필요를 느끼고 홍성에 정착했습니다. 농민들과 지내며 ‘농산물 유통이 대도시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문제를 실감했고, 지역 소비자와 농민이 직접 연결되는 방식을 실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친환경 밀키트와 새벽배송 시스템을 통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유통 구조를 설계하고, 농산물 유통을 넘어 지역의 먹거리와 삶의 방식을 재구성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중심의 효율보다 관계 중심의 지속 가능성을 실천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소셜디자이너 김인호(삼삼은구)는 대안 학교 교사 시절 홍천 물걸리에서 ‘일 년 살이’ 프로젝트를 하며 농촌의 환경 문제를 경험했고, 마을에 정착해 직접 실천해보자는 마음으로 귀촌을 결정했습니다. 마을 주민과 모임을 만들어 환경 문제를 공부하고 자체 분리 배출 시스템 ‘모아’을 만들며 공동체 내 순환 구조를 설계하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엔 마을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꾸준한 활동으로 신뢰를 얻었고, 지금은 마을 안팎에서 환경과 일자리 문제를 함께 풀어낸 사례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소셜디자이너 김가현(스튜디오 어중간)은 중증 질병을 앓던 동료의 곁에서 투병 과정을 지켜보며, 아픈 청년들이 고립되는 구조적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2030세대는 아프다는 말을 숨겨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에 주목해, 동료와 함께 2030 투병문화 매거진 <병:맛>을 창간했습니다. 이후 연고 없는 강원도 영월에 정착해 회복의 공간 ‘스튜디오 어중간’을 열고 투병인과 그 곁의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와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질병을 개인의 고통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 공감과 회복의 언어로 바꾸는 시도라는 점에서, 공공·행정의 의료·복지 중심 접근과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왜 지금, 소셜디자이너인가?
제도는 너무 느리고, 시장은 너무 빨라서 포착하지 못하는 지점이 늘어나며, 기존의 정부, 시장, 시민사회라는 전통적 구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소셜디자이너는 그 틈에서 등장합니다. 이들은 부러 그 경계에 자신을 놓고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로, 제안자가 아닌 설계자로 스스로를 전환시킵니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새로운 시대의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자신의 일상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실험·실행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시민사회 활동과 맞닿아 있지만, 스스로 조직과 자원을 만들어 지속가능성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지역사회의 구조를 파악하여 자원의 흐름과 방향을 설계하고, 관계를 기반으로 소셜 임팩트를 확장하며 공공과 행정의 파트너로까지 나아갑니다.

느리더라도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소셜디자이너는 기존의 문제 해결 구조와 역할의 바깥에 있기에, 자원을 확보하기 어렵고 문제 해결과 확산 속도 또한 비교적 느리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존의 영역에서 해오지 못한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문제 해결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집니다. 근본적 문제 해결을 통한 지역·사회 구조를 바꾸는 실험형 설계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소셜디자이너는 당장의 해결책이나 수익 창출 보다 지속가능한 해법을 설계하고, 관계망과 자원을 다시 엮어내며, 행정이 놓친 지점을 시민적 상상력으로 보완합니다. 시장의 수요가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와 연결을 기반으로 비즈니스와 활동을 펼칩니다.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로 지역과 사회에도 자산이 됩니다.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어진 학습과 네트워크는 다음을 위한 공공의 기반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소셜디자이너의 비법은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
희망제작소는 지난 3년간, 새롭게 등장한 이 시대의 소셜디자이너를 만나 인터뷰하고 관찰하며 그 변화의 흐름을 기록했는데요. 34명의 소셜디자이너를 인터뷰하고, 334명(2022 소셜디자이너클럽 컨퍼런스, 2023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 2024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 누적)의 시민과 소셜디자이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단순히 응원하거나 기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어떤 실천이 지속되고, 어떻게 정책으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하고 유형화해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점 지역도, 조직 형태와 규모도, 해결하고 있는 문제와 방법도 모두 다르지만, 그 운영 원리와 방향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이 핵심 요소에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즈니스 기반형 문제 해결’과 비교하면 특징과 차이가 더 분명해집니다.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은 단기간의 수익이나 표면적인 성과보다 신뢰, 지속성, 공동체적 연결을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자 핵심으로 삼습니다. 이들은 먼저 관계를 설계하고, 그 위에 구조를 올립니다. 소셜디자이너들은 다양한 형태와 유형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모두 '관계 기반 문제 해결'을 중심에 두고 그에 적합한 조직 형태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의 부재는 곧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합니다. 예컨대, 농촌 지역의 빈집 활용은 비즈니스 기반의 수요-공급 논리로 접근되어, 입주자 유치와 공간 리모델링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마을 안에서의 생활, 돌봄, 이웃과의 상호작용이 빠진 채 하드웨어 중심으로만 추진되면서 정작 지역 정착이나 공동체 회복에는 한계가 뚜렷하여 원주민과 이주민 커뮤니티가 분리되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시니어 디지털 격차 해소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키오스크 체험 교육이나 단기 강의는 대부분 기술 사용법만 알려주고 끝나지만, 실제 기기의 메뉴 구성은 매장마다 다르고, 업데이트나 위치 이동 등으로 사용자 경험이 끊임없이 변합니다. 결국 옆에서 수시로 도와줄 누군가가 없으면, 그 배움은 실생활에서 무용지물이 되기 쉽습니다. 관계 기반의 상시적 응대와 신뢰, 생활 속 연결이 없다면, 교육은 일시적 체험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구분 | 관계기반형 문제해결 |
비지니스 기반형 문제해결
|
문제정의 | 사람, 공동체 중심 | 시장 수요, 효율성 중심 |
중심가치 | 신뢰, 협력, 조율 통한 지속가능관계구축과 사회적가치 창출 | 명확한 목표, 측정, 수익을 통한 비지니스 목표 달성과 수익 극대화 |
목표설정 | 공동체의 필요와 관계에 의해 | 시장과 고객의 수요에 의해 |
해결방법 | 네트워크, 갈등 중재 통한 구조 및 문화 설계 | 데이터 분석, 성과평가 통한 제품 및 서비스 |
변화과정 | 자발적 참여 통한 점전적 변화 | 전략적 계획에 따른 급진적 변화 |
지속전략 | 관계, 신뢰 확대 | 투자와 수익 순환 |
성과측정 | 관계의 질, 신뢰도, 참여도 등 정성적 지표 사회적 연결과 변화의 깊이 | ROI, 매출, 시장점유율 등 정량적 지표 성장률과 매출 성과 |
특징 | 해결 속도 느리고, 경제적 지속 어려움 그러나 지속가능한 문제해결구조 형성 | 시장친화적 모델을 통해 지속 가능하나 관계적 측면의 신뢰자본 형성 어려움 |
반면 소셜디자이너는 문제를 경험한 사람이 설계자이자 실행자가 되기 때문에 공공·행정, 영리가 놓치고 있는 혹은 채울 수 없는 현장의 수요를 메우며 장기적인 구조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소셜디자이너 서동선(협동조합 팜앤디) 대표가 대표적인 예인데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로 대규모 기업농장에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던 그는 한국 농촌의 ‘함께 일하고, 놀고, 생활하는’ 공동체성이 큰 잠재력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마음이 맞는 동기들과 전남 곡성에 정착해 ‘협동조합 팜앤디’를 설립하고, 농촌 공동체 기반의 인구이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청춘작당’을 통해 청년 유입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지역에 머물며 살아갈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고자 직접 지역 내 기업을 전수조사하며 지속가능한 일·거주·공동체 모델을 새롭게 설계합니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일자리 제공이 아닌, 주거, 커뮤니티, 일의 연결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지역의 자원을 조사하여 청년과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하며, 기획 초기부터 곡성군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군이 소유하고 있던 '심청마을'을 기업을 위한 워케이션 및 커뮤니티 공간 ‘러스틱 타운’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팜앤디는 기존의 일자리 중심 청년 정책과 달리, 주거·관계·일을 연결하는 생태계를 설계하며 청년을 정책 수혜자가 아닌 지역 설계의 파트너로 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과 자원을 연결해 공동 설계해 나가는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로 접근했기에 가능했습니다.

2024 사회적가치투자(SIR) 대회 현장
문제는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희망제작소는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사회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소셜디자이너가 한국 사회가 맞이한 위기 속에서도 공공성과 공동체를 다시 상상하고, 다시 희망을 찾게 하는 새로운 미래라고 믿습니다. 다음 시대의 시민 참여가 지향해야할 방향임을 소셜디자이너들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비즈니스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특히 로컬에서, 그리고 청년 활동은 더욱 그렇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앞으로도 단발적인 사례 발굴이 아닌 장기적인 협력과 지속 가능한 관계를 바탕으로 소셜디자이너의 비즈니스와 활동이 사라지지 않도록, 정책적 뒷받침과 사회적 인정을 연결하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빠르게 성과를 내는 방식이 아닌,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는 변화의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우리 곁의 소셜디자이너들이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뜨거운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글: 최나현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 ㅣ trami@makehope.org

희망제작소를 향한 단골 질문은 "희망제작소는 뭐 하는 곳인가요?" 그 답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려는 실험을 이어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희망제작소가 내년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그 긴 세월 동안 주체(시민), 문제, 해결, 정책 등의 모양이 각양각색 변화했습니다.
그래도 단박에 뭐 하는 곳인지 이해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희망제작소가 꾸준히 주목해온 것을 소개합니다. 불편을 말하면 민원이 되고, 해결을 요구하면 정책화 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변화는 더디고, 문제는 반복됩니다. 대부분 이런 현실을 그러려니 받아들이지만, 누군가는 그 틈을 넘어서곤 합니다.
희망제작소는 2006년 창립 때부터 그들을 지켜봐 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소셜디자이너’라 불러왔습니다.
최근 우리는 새로운 소셜디자이너의 탄생을 경험했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석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현장의 언어로 설계하고, 누구보다 정교하게 풀어가는 이들을 말입니다. 뚜렷한 조직도 안정된 자원도 없지만, 이를 장점 삼아 행정과 제도, 공공과 시장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처음엔 낯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새로운 세계가, 바로 이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는 그들을 '소셜디자이너'라는 세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희망제작소가 만나온 소셜디자이너들은, 별난 선택을 자신 있게 하는 ‘문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의 작은 불편함과 문제를 발견하고, 직접 문제 해결에 도전하며, 결국 구조를 바꿔내기 때문입니다.
최정원(청춘연구소), 김만이(초록코끼리), 김인호(삼삼은구), 김가현(스튜디오어중간) 사진 좌측부터.
소셜디자이너 최정원(청춘연구소)은 대학 시절, 또래 청년들의 진로 고민과 지역 활동에 참여하며 ‘청년은 왜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단순히 머무르는 것을 넘어, 지역에서 스스로 삶을 설계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했고, 커뮤니티와 진로 교육을 연결하는 모델을 구상했습니다. 부산에서 청년과 주민이 함께 일상을 나누는 ‘청년마루’를 운영하게 되었고 단순한 취업이 아닌 ‘로컬 커리어 설계’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앙 중심의 훈련-취업 연계 정책과 달리, 청년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지역 변화의 주체로 세우려는 시도입니다.
소셜디자이너 김만이(초록코끼리)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촌 관련 국책연구소에서 일하던 중, 현실을 직접 경험할 필요를 느끼고 홍성에 정착했습니다. 농민들과 지내며 ‘농산물 유통이 대도시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문제를 실감했고, 지역 소비자와 농민이 직접 연결되는 방식을 실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친환경 밀키트와 새벽배송 시스템을 통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유통 구조를 설계하고, 농산물 유통을 넘어 지역의 먹거리와 삶의 방식을 재구성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중심의 효율보다 관계 중심의 지속 가능성을 실천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소셜디자이너 김인호(삼삼은구)는 대안 학교 교사 시절 홍천 물걸리에서 ‘일 년 살이’ 프로젝트를 하며 농촌의 환경 문제를 경험했고, 마을에 정착해 직접 실천해보자는 마음으로 귀촌을 결정했습니다. 마을 주민과 모임을 만들어 환경 문제를 공부하고 자체 분리 배출 시스템 ‘모아’을 만들며 공동체 내 순환 구조를 설계하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엔 마을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꾸준한 활동으로 신뢰를 얻었고, 지금은 마을 안팎에서 환경과 일자리 문제를 함께 풀어낸 사례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소셜디자이너 김가현(스튜디오 어중간)은 중증 질병을 앓던 동료의 곁에서 투병 과정을 지켜보며, 아픈 청년들이 고립되는 구조적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2030세대는 아프다는 말을 숨겨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에 주목해, 동료와 함께 2030 투병문화 매거진 <병:맛>을 창간했습니다. 이후 연고 없는 강원도 영월에 정착해 회복의 공간 ‘스튜디오 어중간’을 열고 투병인과 그 곁의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와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질병을 개인의 고통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 공감과 회복의 언어로 바꾸는 시도라는 점에서, 공공·행정의 의료·복지 중심 접근과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제도는 너무 느리고, 시장은 너무 빨라서 포착하지 못하는 지점이 늘어나며, 기존의 정부, 시장, 시민사회라는 전통적 구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소셜디자이너는 그 틈에서 등장합니다. 이들은 부러 그 경계에 자신을 놓고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로, 제안자가 아닌 설계자로 스스로를 전환시킵니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새로운 시대의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자신의 일상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실험·실행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시민사회 활동과 맞닿아 있지만, 스스로 조직과 자원을 만들어 지속가능성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지역사회의 구조를 파악하여 자원의 흐름과 방향을 설계하고, 관계를 기반으로 소셜 임팩트를 확장하며 공공과 행정의 파트너로까지 나아갑니다.
소셜디자이너는 기존의 문제 해결 구조와 역할의 바깥에 있기에, 자원을 확보하기 어렵고 문제 해결과 확산 속도 또한 비교적 느리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존의 영역에서 해오지 못한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문제 해결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집니다. 근본적 문제 해결을 통한 지역·사회 구조를 바꾸는 실험형 설계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소셜디자이너는 당장의 해결책이나 수익 창출 보다 지속가능한 해법을 설계하고, 관계망과 자원을 다시 엮어내며, 행정이 놓친 지점을 시민적 상상력으로 보완합니다. 시장의 수요가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와 연결을 기반으로 비즈니스와 활동을 펼칩니다.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로 지역과 사회에도 자산이 됩니다.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어진 학습과 네트워크는 다음을 위한 공공의 기반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희망제작소는 지난 3년간, 새롭게 등장한 이 시대의 소셜디자이너를 만나 인터뷰하고 관찰하며 그 변화의 흐름을 기록했는데요. 34명의 소셜디자이너를 인터뷰하고, 334명(2022 소셜디자이너클럽 컨퍼런스, 2023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 2024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 누적)의 시민과 소셜디자이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단순히 응원하거나 기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어떤 실천이 지속되고, 어떻게 정책으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하고 유형화해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점 지역도, 조직 형태와 규모도, 해결하고 있는 문제와 방법도 모두 다르지만, 그 운영 원리와 방향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이 핵심 요소에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즈니스 기반형 문제 해결’과 비교하면 특징과 차이가 더 분명해집니다.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은 단기간의 수익이나 표면적인 성과보다 신뢰, 지속성, 공동체적 연결을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자 핵심으로 삼습니다. 이들은 먼저 관계를 설계하고, 그 위에 구조를 올립니다. 소셜디자이너들은 다양한 형태와 유형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모두 '관계 기반 문제 해결'을 중심에 두고 그에 적합한 조직 형태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의 부재는 곧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합니다. 예컨대, 농촌 지역의 빈집 활용은 비즈니스 기반의 수요-공급 논리로 접근되어, 입주자 유치와 공간 리모델링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마을 안에서의 생활, 돌봄, 이웃과의 상호작용이 빠진 채 하드웨어 중심으로만 추진되면서 정작 지역 정착이나 공동체 회복에는 한계가 뚜렷하여 원주민과 이주민 커뮤니티가 분리되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시니어 디지털 격차 해소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키오스크 체험 교육이나 단기 강의는 대부분 기술 사용법만 알려주고 끝나지만, 실제 기기의 메뉴 구성은 매장마다 다르고, 업데이트나 위치 이동 등으로 사용자 경험이 끊임없이 변합니다. 결국 옆에서 수시로 도와줄 누군가가 없으면, 그 배움은 실생활에서 무용지물이 되기 쉽습니다. 관계 기반의 상시적 응대와 신뢰, 생활 속 연결이 없다면, 교육은 일시적 체험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소셜디자이너는 문제를 경험한 사람이 설계자이자 실행자가 되기 때문에 공공·행정, 영리가 놓치고 있는 혹은 채울 수 없는 현장의 수요를 메우며 장기적인 구조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소셜디자이너 서동선(협동조합 팜앤디) 대표가 대표적인 예인데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로 대규모 기업농장에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던 그는 한국 농촌의 ‘함께 일하고, 놀고, 생활하는’ 공동체성이 큰 잠재력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마음이 맞는 동기들과 전남 곡성에 정착해 ‘협동조합 팜앤디’를 설립하고, 농촌 공동체 기반의 인구이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청춘작당’을 통해 청년 유입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지역에 머물며 살아갈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고자 직접 지역 내 기업을 전수조사하며 지속가능한 일·거주·공동체 모델을 새롭게 설계합니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일자리 제공이 아닌, 주거, 커뮤니티, 일의 연결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지역의 자원을 조사하여 청년과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하며, 기획 초기부터 곡성군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군이 소유하고 있던 '심청마을'을 기업을 위한 워케이션 및 커뮤니티 공간 ‘러스틱 타운’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팜앤디는 기존의 일자리 중심 청년 정책과 달리, 주거·관계·일을 연결하는 생태계를 설계하며 청년을 정책 수혜자가 아닌 지역 설계의 파트너로 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과 자원을 연결해 공동 설계해 나가는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로 접근했기에 가능했습니다.
2024 사회적가치투자(SIR) 대회 현장
희망제작소는 관계 기반형 문제 해결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사회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소셜디자이너가 한국 사회가 맞이한 위기 속에서도 공공성과 공동체를 다시 상상하고, 다시 희망을 찾게 하는 새로운 미래라고 믿습니다. 다음 시대의 시민 참여가 지향해야할 방향임을 소셜디자이너들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비즈니스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특히 로컬에서, 그리고 청년 활동은 더욱 그렇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앞으로도 단발적인 사례 발굴이 아닌 장기적인 협력과 지속 가능한 관계를 바탕으로 소셜디자이너의 비즈니스와 활동이 사라지지 않도록, 정책적 뒷받침과 사회적 인정을 연결하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빠르게 성과를 내는 방식이 아닌,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는 변화의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우리 곁의 소셜디자이너들이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뜨거운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글: 최나현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 ㅣ trami@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