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멈추는 용기, 연결을 벌기로 했다
15년의 관성을 멈추고 마주한 것들
계속 달리던 사람에게 ‘잠시 멈춤’은 휴식이라기보다 막연한 두려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여기서 멈추게 되면 다시 달릴 수 없지 않을까, 달리기는커녕 걷는 일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마음이었지만, 그땐 정말 제 세상이 같이 멈출까 두려웠거든요. 물론, 그것이 커다란 기우였음을 이제는 압니다.
지난해 9월,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사랑하던 일과 조직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건, 15년 넘게 이 일에 에너지를 쏟아온 제게 더없이 큰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건강검진에서 확인된 ‘경고등’이었지만, 사실 제 몸은(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 15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엔진이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마침 10월엔 월간 옥이네 100호 발행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창간 당시엔 준비위원으로, 2019년부터 편집장으로 본격 합류해 그 시작을 함께했던 사람으로서, 이 숫자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습니다. 100이라는 숫자가 마침표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이후 제가 담당해온 문화기획 사업들, 연말을 향해 달리던 조직의 이런저런 일들을 정리하고 하나씩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일과 헤어졌습니다.
15년을 같이한 이름표를 떼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프지 않았어요. 퇴사를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아팠기 때문이었을까요.
퇴사 후의 공백은 고요할 줄 알았으나 실상은 격동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은 여전히 아팠고, 15년간 축적된 책임감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 시기, 희망제작소에서 SIR 대회 참여를 권유해주셨습니다. 지난해 신규 소셜디자이너로 처음 인사를 나눈 데 이어 두 번째 대회였고, 올해는 기존 소셜디자이너들을 위한 새로운 트랙이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더 많은 활동, 더 많은 활동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있었기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퇴사 준비의 막바지였고, 몸도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그럼에도 준비 과정은 의외로 즐거웠고, 대회 당일 현장에서 만난 동료들의 에너지는 고갈된 제 안의 무언가를 다시 채워주었습니다. 아, 나는 여전히 ‘연결’되고 싶어 하는구나. 그걸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오래 품어온 문제의식을 꺼내놓기도 했습니다. ‘읍면자치 아카이브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요. 대회 무대에서 저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나는 ‘사라지는 농촌’이 아닌 ‘가능성의 농촌’을 기록하는 시민입니다.” 15년 동안 옥천에서 기자로, 편집장으로, 기획자로 일하면서 저는 줄곧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생활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리고, 주민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때때로, 아니 많은 경우 직접 ‘일’을 기획하는 활동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기록이 단순 보도에 그치지 않도록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지역의 변화가 마냥 어려운 일만은 아니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자꾸 같은 질문에 부딪혔습니다. 충북 옥천에서 일어난 좋은 실험이, 왜 경북 어딘가에서 비슷한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다시 재발견되는 걸까.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이 이토록 많은데, 왜 그 지혜는 옆 동네에 가닿지 못하는 걸까. 좋은 실험은 많은데,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것이 제가 오래 품어온 문제였습니다.
아카이브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한 사례 모음집이 아니라, 인구 5만 이하 농어촌 읍면 지역에서 일상의 문제를 공적으로 해결해온 사례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다음 지역도 참고할 수 있는 원리와 맥락을 뽑아내는 작업입니다. 자치의 지혜가 특정 지역의 자산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꺼내 쓸 수 있는 공유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프로젝트는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카이브는 책상 위에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길어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례를 담을지,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지, 무엇이 진짜 현장에서 작동하는 원리인지 - 이것들은 충분한 현장 경험과 관계 없이는 섣불리 틀을 짤 수 없습니다. 서두르다 겉만 번지르르한 결과에 그치느니, 지금 이 시간 동안 현장과 사람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모든 활동이 그 뿌리를 내리는 과정입니다.
올해 1월엔 읍면자치공동행동이 주관하는 단행본 출간 작업에 함께했습니다.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많이 배웠습니다. 그 책이 1쇄 1,500부를 완판하고 현재 2쇄가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결정하는 삶’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이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걸 실감합니다.
2월과 3월은 오롯이 나와 집을 돌보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운동, 산책, 병원 정기 검진, 직접 차린 소박한 밥상. 설 연휴가 지난 뒤엔 퇴사 잔치도 열었습니다. 전국에서 친구들이 모여줬고, 그 온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은혜가 너무 커서, ‘박누리 사용권’ 티켓을 만들어 나눠줬습니다. 시간과 재능으로 - 환대의 맥락으로 연결을 유통해보겠다는, 소박하지만 단호한 선언이었습니다.

2025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의 트랙2에 참가한 박누리 대표 ⓒ희망제작소
자본의 논리에 대항하는 ‘반 백수’의 선언
4월부터는 스스로를 ‘반 백수, 반 프리랜서’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퇴사를 결심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실험이었습니다. 돈을 벌지 않고 살아보자. 더 정확히는, 돈이 되지 않더라도 지역에,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활동의 가치를 예산 규모나 수익, 수치로 환산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 바깥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소박하지만 나름은 꽤 단단한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지역의 옥천생태미각사회적협동조합에서 함께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지역 먹을거리를 매개로 사람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지역 청년들의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한 소셜다이닝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 중입니다. 밥 한 끼를 나누는 자리이지만, 그 식탁 위에서 끊어진 관계망이 다시 이어집니다. 단순한 밥자리가 아니라, 동네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기획해볼 수 있는 심리적 거점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옥천 지역 청년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식농활동교육 ‘소셜다이닝’ ⓒ희망제작소
식탁 위에서, 골목에서, 오래된 극장에서 피어나는 읍면자치
종종 제 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4월엔 강원 원주로 강의를 다녀왔습니다. 초대해주신 곳은 ‘아카데미의친구들’입니다. 원주에서 6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될 때, 그에 맞섰던 지역 문화예술 활동가와 청년 기획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철거를 막지는 못했지만, 그 저항의 경험을 발판 삼아 지금도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읍면자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분들의 경험이 읍면자치의 핵심 문제의식과 정확히 닿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카데미극장 철거 과정에서 상처받은 것은 단순히 건물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시민이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권리, 그 결정권이 침해당한 경험이었습니다. 한 참가자가 강의 후에 이런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상처가 대안으로 바뀌는 지점”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고. 제가 드린 말씀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그 말을 다시 받아들고 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젊은 문화기획자들의 활동과 읍면자치가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읍면자치는 농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시의 골목이든, 오래된 극장이든,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나의 삶을 내가 결정하겠다는 선언 - 그것이 읍면자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읍면동 자치제’를 주제로 한 ‘지금 우리, 다음 정치’ 강의 현장 ⓒ희망제작소
기록되지 않은 것들의 기록자가 되기 위해
지금은 여러 기록을 동시에 준비 중입니다. 일본 시마네현 운난시의 자치 현장 사례를 연구하고 돌아오신 선생님들의 단행본 원고 작업을 돕고 있고, 주민 자치 관점에서 농촌 공간 계획을 조명하는 글쓰기도 함께 진행 중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녹색 노동 - 화려한 구호 뒤에서 일상을 묵묵히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작업도 막 시작했습니다. 6월과 7월, 올여름은 이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데 쏟아부을 생각입니다.
이 파편적인 활동들이 사실은 하나의 큰 줄기와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만나는 사람들, 듣는 이야기들, 함께 쓰는 글들은 결국 읍면자치 아카이브를 채울 토양이 되어줄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 어떤 속도로 그것이 만들어질지 아직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느슨하고 다층적인 활동들이 없다면, 아카이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장 없는 기록은 빈 껍데기가 되기 쉽습니다. 지금은 그 현장 안에 최대한 깊이 들어가 있는 시간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생계는 여전히 불안하고, 혼자 감당하는 일의 무게가 때로는 버겁기도 합니다. 지역에서 활동을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새삼 몸으로 배워가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붙들고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성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그 답을 찾는 중입니다. 느리고, 어설프고,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 그래서 오히려 진짜라고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 콘텐츠 스튜디오 ‘누리:사’ 대표. 2010년부터 충북 옥천을 거점으로 옥천신문 기자, 월간 옥이네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삶을 기록하는 ‘99%를 위한 로컬 아카이빙’에 집중해왔다. 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과 공동체의 필요에 응답하고자, 다양한 지역 의제를 문화적 실험으로 풀어내는 문화기획을 병행했다. 최근 독립 스튜디오를 설립해 특정 영역에 갇히지 않고 로컬의 다채로운 매력과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발굴하는 다각도의 프로젝트를 전개 중이다. 올해 초에는 읍면 자치 현장의 사례를 엮은 단행본 『한 권으로 이해하는 읍면자치』 발간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기후위기, 노동, 자치 등 로컬의 다양한 질문을 아카이빙과 콘텐츠 기획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록자이자 문화기획자, 지역에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경계 없이 수행하는 현장 활동가다. |
시민이 투자한 500만 원, 영월과 옥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2025년 12월 4일,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에서 시민 청중심사단의 선택은 실제 투자금이 되었습니다. 시민들이 모의투자로 선택한 500만 원은 강원 영월 ‘스튜디오 어중간’ 김가현 대표의 청년 창작자 레지던스 ‘굴(Guul)’과 충북 옥천 ‘누리:사’ 박누리 대표의 농촌자치 아카이브로 향했는데요. 연재 시리즈 〈오프 더 레코드: 무대가 끝나고 난 뒤〉는 SIR대회 이후, 두 소셜디자이너의 실험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리고 시민의 투자가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현장의 목소리로 전합니다.
1화. 멈추는 용기, 연결을 벌기로 했다
계속 달리던 사람에게 ‘잠시 멈춤’은 휴식이라기보다 막연한 두려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여기서 멈추게 되면 다시 달릴 수 없지 않을까, 달리기는커녕 걷는 일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마음이었지만, 그땐 정말 제 세상이 같이 멈출까 두려웠거든요. 물론, 그것이 커다란 기우였음을 이제는 압니다.
지난해 9월,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사랑하던 일과 조직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건, 15년 넘게 이 일에 에너지를 쏟아온 제게 더없이 큰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건강검진에서 확인된 ‘경고등’이었지만, 사실 제 몸은(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 15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엔진이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마침 10월엔 월간 옥이네 100호 발행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창간 당시엔 준비위원으로, 2019년부터 편집장으로 본격 합류해 그 시작을 함께했던 사람으로서, 이 숫자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습니다. 100이라는 숫자가 마침표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이후 제가 담당해온 문화기획 사업들, 연말을 향해 달리던 조직의 이런저런 일들을 정리하고 하나씩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일과 헤어졌습니다.
15년을 같이한 이름표를 떼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프지 않았어요. 퇴사를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아팠기 때문이었을까요.
퇴사 후의 공백은 고요할 줄 알았으나 실상은 격동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은 여전히 아팠고, 15년간 축적된 책임감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 시기, 희망제작소에서 SIR 대회 참여를 권유해주셨습니다. 지난해 신규 소셜디자이너로 처음 인사를 나눈 데 이어 두 번째 대회였고, 올해는 기존 소셜디자이너들을 위한 새로운 트랙이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더 많은 활동, 더 많은 활동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있었기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퇴사 준비의 막바지였고, 몸도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그럼에도 준비 과정은 의외로 즐거웠고, 대회 당일 현장에서 만난 동료들의 에너지는 고갈된 제 안의 무언가를 다시 채워주었습니다. 아, 나는 여전히 ‘연결’되고 싶어 하는구나. 그걸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오래 품어온 문제의식을 꺼내놓기도 했습니다. ‘읍면자치 아카이브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요. 대회 무대에서 저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나는 ‘사라지는 농촌’이 아닌 ‘가능성의 농촌’을 기록하는 시민입니다.” 15년 동안 옥천에서 기자로, 편집장으로, 기획자로 일하면서 저는 줄곧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생활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리고, 주민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때때로, 아니 많은 경우 직접 ‘일’을 기획하는 활동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기록이 단순 보도에 그치지 않도록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지역의 변화가 마냥 어려운 일만은 아니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자꾸 같은 질문에 부딪혔습니다. 충북 옥천에서 일어난 좋은 실험이, 왜 경북 어딘가에서 비슷한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다시 재발견되는 걸까.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이 이토록 많은데, 왜 그 지혜는 옆 동네에 가닿지 못하는 걸까. 좋은 실험은 많은데,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것이 제가 오래 품어온 문제였습니다.
아카이브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한 사례 모음집이 아니라, 인구 5만 이하 농어촌 읍면 지역에서 일상의 문제를 공적으로 해결해온 사례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다음 지역도 참고할 수 있는 원리와 맥락을 뽑아내는 작업입니다. 자치의 지혜가 특정 지역의 자산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꺼내 쓸 수 있는 공유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프로젝트는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카이브는 책상 위에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길어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례를 담을지,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지, 무엇이 진짜 현장에서 작동하는 원리인지 - 이것들은 충분한 현장 경험과 관계 없이는 섣불리 틀을 짤 수 없습니다. 서두르다 겉만 번지르르한 결과에 그치느니, 지금 이 시간 동안 현장과 사람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모든 활동이 그 뿌리를 내리는 과정입니다.
올해 1월엔 읍면자치공동행동이 주관하는 단행본 출간 작업에 함께했습니다.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많이 배웠습니다. 그 책이 1쇄 1,500부를 완판하고 현재 2쇄가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결정하는 삶’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이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걸 실감합니다.
2월과 3월은 오롯이 나와 집을 돌보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운동, 산책, 병원 정기 검진, 직접 차린 소박한 밥상. 설 연휴가 지난 뒤엔 퇴사 잔치도 열었습니다. 전국에서 친구들이 모여줬고, 그 온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은혜가 너무 커서, ‘박누리 사용권’ 티켓을 만들어 나눠줬습니다. 시간과 재능으로 - 환대의 맥락으로 연결을 유통해보겠다는, 소박하지만 단호한 선언이었습니다.
2025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의 트랙2에 참가한 박누리 대표 ⓒ희망제작소
4월부터는 스스로를 ‘반 백수, 반 프리랜서’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퇴사를 결심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실험이었습니다. 돈을 벌지 않고 살아보자. 더 정확히는, 돈이 되지 않더라도 지역에,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활동의 가치를 예산 규모나 수익, 수치로 환산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 바깥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소박하지만 나름은 꽤 단단한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지역의 옥천생태미각사회적협동조합에서 함께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지역 먹을거리를 매개로 사람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지역 청년들의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한 소셜다이닝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 중입니다. 밥 한 끼를 나누는 자리이지만, 그 식탁 위에서 끊어진 관계망이 다시 이어집니다. 단순한 밥자리가 아니라, 동네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기획해볼 수 있는 심리적 거점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옥천 지역 청년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식농활동교육 ‘소셜다이닝’ ⓒ희망제작소
종종 제 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4월엔 강원 원주로 강의를 다녀왔습니다. 초대해주신 곳은 ‘아카데미의친구들’입니다. 원주에서 6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될 때, 그에 맞섰던 지역 문화예술 활동가와 청년 기획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철거를 막지는 못했지만, 그 저항의 경험을 발판 삼아 지금도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읍면자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분들의 경험이 읍면자치의 핵심 문제의식과 정확히 닿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카데미극장 철거 과정에서 상처받은 것은 단순히 건물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시민이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권리, 그 결정권이 침해당한 경험이었습니다. 한 참가자가 강의 후에 이런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상처가 대안으로 바뀌는 지점”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고. 제가 드린 말씀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그 말을 다시 받아들고 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젊은 문화기획자들의 활동과 읍면자치가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읍면자치는 농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시의 골목이든, 오래된 극장이든,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나의 삶을 내가 결정하겠다는 선언 - 그것이 읍면자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읍면동 자치제’를 주제로 한 ‘지금 우리, 다음 정치’ 강의 현장 ⓒ희망제작소
지금은 여러 기록을 동시에 준비 중입니다. 일본 시마네현 운난시의 자치 현장 사례를 연구하고 돌아오신 선생님들의 단행본 원고 작업을 돕고 있고, 주민 자치 관점에서 농촌 공간 계획을 조명하는 글쓰기도 함께 진행 중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녹색 노동 - 화려한 구호 뒤에서 일상을 묵묵히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작업도 막 시작했습니다. 6월과 7월, 올여름은 이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데 쏟아부을 생각입니다.
이 파편적인 활동들이 사실은 하나의 큰 줄기와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만나는 사람들, 듣는 이야기들, 함께 쓰는 글들은 결국 읍면자치 아카이브를 채울 토양이 되어줄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 어떤 속도로 그것이 만들어질지 아직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느슨하고 다층적인 활동들이 없다면, 아카이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장 없는 기록은 빈 껍데기가 되기 쉽습니다. 지금은 그 현장 안에 최대한 깊이 들어가 있는 시간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생계는 여전히 불안하고, 혼자 감당하는 일의 무게가 때로는 버겁기도 합니다. 지역에서 활동을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새삼 몸으로 배워가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붙들고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성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그 답을 찾는 중입니다. 느리고, 어설프고,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 그래서 오히려 진짜라고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