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심사단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마음으로- 이혜진 연구원의 SIR대회 기획노트✏️

2025-12-16

2025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의 열기와 질문은 아직 이어지고 있습니다. SIR대회 현장에서 마주한 시민과 소셜디자이너의 고민과 가능성을 담고, 그간 대회에 참여해온 소셜디자이너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돌아봅니다. 이번 무대를 만든 기획자들의 기록까지, SIR대회 이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청중심사단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마음으로

이혜진 연구원의 SIR대회 기획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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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 소개 카드에 필기를 하는 시민의 모습 ⓒ공익저널 차종관


존경과 부담 사이에서, 인터뷰어의 역할을 고민하다

감사하게도 입사 일주일 만에 고양시, 세종시, 제주도 등 전국 각지의 소셜디자이너분들을 직접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현장에 계신 분들을 만나 뵙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지만, 막상 돌아와 원고를 쓰려니 생각보다 손이 움직이지 않아 작성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저의 첫 인터뷰였던 시니어활동연구소 ‘오늘도봄날&굿서포트’의 윤서우 대표님과의 만남입니다. 대표님께서 걸어온 시간과 삶의 흔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니, 존경심이 솟는 동시에 엄청난 부담감이 밀려왔습니다. ‘이 깊은 고민과 진심을 내가 텍스트 몇 줄로 담아낼 수 있을까?’ 인터뷰어로서 단순히 말을 받아 적는 게 아니라, 삶의 무게를 왜곡 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떻게 다듬어야 소셜디자이너의 삶이 다른 시민에게 온전하게 가닿을지, 정말 많이 고민하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웃픈’ 실수도 있었습니다. 인터뷰가 처음이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한 번은 보조로 동행한 인터뷰에서 녹음을 맡았는데, 2시간 넘는 인터뷰가 끝나고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더니 녹음이 30분밖에 안 되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던 게 아직도 생생하네요. 다행히 최나현 선임 연구원님이 인터뷰를 리드하며 간단히 속기를 병행한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날 이후 인터뷰를 나갈 때엔 항상 여분의 녹음기를 챙겨야 한다는 식은 땀 나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소셜디자이너를 만나며 제가 가장 크게 배운 건 ‘삶을 대하는 태도’ 입니다. 소셜디자이너는 먹고 사는 일로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분들이잖아요. “어떻게 저렇게 열정적으로 살고 계실까?” 싶어 가슴이 뜨거워지는 날도 있었지만, 솔직히 어떤 날은 묘한 ‘박탈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스스로가 한 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생각하는 건 쉽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감정의 변화를 거치며, 저는 소셜디자이너의 용기와 노력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더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소셜디자이너와 연구원이라는 관계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그들의 삶을 배우고 제 언어로 전달할 수 있었던 건, 저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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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칭에 임하고 있는 소셜디자이너 윤서우 대표의 모습 ⓒ희망제작소


청중심사단의 생각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마음으로

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작업이 끝날 무렵, 저는 소셜디자이너 전시 파트 기획을 맡게 됐습니다. 본 행사 무대는 행사장 ‘안’에 있지만, 청중심사단의 경험은 ‘바깥’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소셜디자이너 전시는 청중이 소셜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을 만드는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입사 한 달 차에 입장부터 퇴장까지 이어지는 청중심사단의 경험의 흐름을 전반을 기획하게 된 셈입니다. 

처음엔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직 팀 업무나 사업 구조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고, 스스로도 부족하다고 느끼던 시기라 ‘내가 감히 이 큰 대회의 경험을 설계해도 될까’ 싶어 막막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구원으로서의 전문성이나 깊이는 더 쌓아가야겠지만, ‘청중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사회적가치에 관심은 있지만, 실천 앞에서 망설이는 아주 평범한 시민 중 한 사람이니까요. 

청중의 시선에서 대회를 바라보는 것”에서 경험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SIR대회는 소셜디자이너의 실험과 도전을 무대 위에서 선명하게 보여주는 데 강점이 있었고, 청중심사단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응원’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응원은 마음을 모으는 데에는 분명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다만 그 마음이 “내 삶과도 닿아 있다”는 공감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나도 내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확장되려면 그에 맞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사회혁신팀이 세운 올해 대회의 목표, “관객이 아니라 파트너 시민을 초대한다”에 맞춰, 청중심사단이 응원하는 ‘서포터’에 머무르지 않고 SIR대회를 함께 완성하는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고민했습니다. ‘청중심사단이 SIR대회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계속 탐구한 끝에, “나(청중)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참여”라는 힌트를 찾아냈습니다. 귀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 행사장에 발걸음하는 이유에는 소셜디자이너를 지지하는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내 삶을 바꾸거나 지탱할 사회적가치와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가 함께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은 제 경험과도 닿아 있었습니다. ‘사회적가치’라는 말은 저에게도 여전히 모호하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소셜디자이너들을 보면 “대단하다”, “멋지다”는 감탄이 먼저 올라오지만, 동시에 “나는 저렇게 못 할 거야”라는 거리감이 따라붙기도 했고요. 그래서 올해 청중심사단 경험의 키워드를 ‘응원’이 아니라 ‘공감과 연결’로 잡았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누군가의 특별한 이야기로 남겨두는 대신, “나와도 연결된 문제다”라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나도 내 방식대로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는 작은 용기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청중이 행사장을 나설 때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손에 쥐고 돌아가길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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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의 노트’ 전시를 관람하는 청중심사단 ⓒ희망제작소


소셜디자이너에게 묻고, 소셜디자이너가 묻는 전시를 기획하다

그 고민을 구체적으로 풀어낸 결과물이 바로 ‘소셜디자이너의 노트’라는 이름의 전시입니다. 대회 무대 위에 오르는 소셜디자이너만 소개할 수 있다는 그동안의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2022년부터 소셜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51명의 소셜디자이너를 한 자리에 모아보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단순히 “이런 훌륭한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나열로 끝나지 않길 바랐습니다. 소셜디자이너 인터뷰를 마칠 때, 사회혁신팀은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일을 계속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사회문제해결을 이어가고 있는 동기와 계기, 그 사람만의 선택을 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중심사단도 51명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이 업을 선택했을까?” “나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래서 ‘왜(why)’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소셜디자이너의 차별점과 강점은 ‘시작’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활동의 ‘결과’보다, 시작의 계기와 그 사람만의 해결 방식이 먼저 보이도록 스토리를 설계했습니다. 이는 “전환을 만든 다섯 가지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연결되었는데요. 소셜디자이너가 삶의 전환기에서 사회문제해결을 업으로 삼게 된 배경과 이유를 분석하여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구조화했습니다. 청중이 “대단하다”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 삶과 닮은 지점을 발견하길 바라는 의도를 담았습니다.


  • 당신이 외면하지 못한 한 장면은 무엇인가요? : 공감·연대(동행인)
  • 생활 속 아이디어가 사회문제 해결로 연결될 수 있을까요? : 실용·혁신(해결사)
  • 혼자가 아닌 동료와 함께여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 관계·공동체(촉진자)
  • 당신의 호기심 또는 취미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 발견·탐험(모험가)
  • 세상에 꼭 알리고 싶은 당신만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 기록·확산(전달자)


기획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제 MBTI가 극 ‘S(감각)’라 그런지(하하),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의 흐름이나 추상적인 가치를 시각화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 소셜디자이너 51명의 이야기를 어떤 기준으로 묶고 보여줄지 기획하는 일이 어려웠는데요. 이때 SIR대회를 함께 준비한 최나현 선임 연구원님의 한 마디가 큰 힌트가 됐습니다. 언젠가의 대화에서 “저는 어떤 사람이 만들어 낸 결과 자체보다, 여기에 오기까지의 ‘흐름’이 늘 궁금해요. 그건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야만 알 수 있는 거잖아요”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참 배우고 싶은 시선이었어요. 사람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바라보는 거잖아요. 우리 모두는 삶의 과정 중 한 부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시각을 옆에서 보고 듣고 배우면서 자연스레 그 의도가 녹여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셜디자이너를 분류하는 기준도 활동 영역이 아닌, ‘왜 해결하는가(가치관)’와 ‘어떻게 해결하는가(방법론)’로 잡았습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도 51가지의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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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의 노트’ 전시를 관람하는 청중심사단 ⓒ공익저널 차종관


SIR대회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사업 기획 참고를 위해 다른 곳에서 운영하는 IR 대회에 참여해보며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소외감’이었습니다. 무대 위 발표자들은 빛나는데, 객석의 저는 그저 박수 쳐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돌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희망제작소가 만드는, 제가 기획에 참여한 SIR대회만큼은 다르길 바랐습니다. 소개 문구처럼 정말 ‘세상에 없던 IR대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소셜디자이너와 청중심사단이 서로 질문을 주고받고, 선택과 지지로 무대를 함께 완성하면서 ‘같이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이 오가고, 그 자리에서 서로가 조금씩 바뀌는 장면이 생긴다는 점에서 우리 대회가 IR계의 ‘유퀴즈(유퀴즈 온 더 블럭)’ 같다는 자부심도 들었습니다(하하).

주니어 연구원으로서 부족한 점도 많았고, 좌충우돌한 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올해 SIR대회에서의 청중심사단 경험은, 부러 ‘가장 보통의 시선’에서 출발해보고 싶었습니다. 사회적가치에 마음은 있지만 실천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의 마음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 기록이 행사에 참여하신 모든 분께,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예비 소셜디자이너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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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의 노트' 전시 팝업 ⓒ희망제작소


🌗  비하인드: 사회혁신팀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전시를 중심으로 청중심사단의 경험 파트 기획을 맡아 진행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행사 종료 후 “SIR대회를 어떤 기획 업체와 작업한 거냐”는 문의를 주셨을 때였습니다. “퀄리티가 좋다”, “신선한 감각이다”, “기획이 세심하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았지만, 더 자랑하고 싶은 건 따로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사회혁신팀 3명이 똘똘 뭉쳐 만든 ‘100% 자체 제작’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던진 투박한 기획 의도와 아이디어를 안영삼 팀장님께서 함께 구체화하며 피와 땀이 (어쩌면 눈물도) 섞인 디자인으로 시각화해주셨고, 최나현 선임 연구원님은 한 문장, 한 문장을 고도화된 시선으로 다듬어 소셜디자이너들의 이야기에 깊이를 더해주셨습니다.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끝없는 회의와 치열한 토론을 거쳤기에, 소셜디자이너도 청중심사단도 ‘함께 주인공인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무대를 위해 사회혁신팀은 언제나 사무실의 불을 가장 늦게 끄곤 했습니다. 그래서 대회가 무사히 끝난 뒤 “이제 우리도 정시 퇴근하자!”며 야심 차게 ‘정시 퇴근 운동’을 시작했는데요. 슬프게도(?) 벌써 2일 차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하하). 비록 칼퇴는 실패했지만, 늦은 밤까지 머리를 맞대고 ‘이 정도면 됐다’가 아니라 ‘이 정도로 될까’를 끝까지 고민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세심한 부분까지 기획이 반영된 완성도 높은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부족한 주니어 연구원을 믿고 이끌어주신 사회혁신팀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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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이혜진 연구원 ⓒ희망제작소


글: 사회혁신팀 이혜진 연구원 | 사진: 희망제작소 , 공익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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