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커뮤니티: 조건이 필요한가요?

2025-07-14

“지역으로 가라”, “창업하라”는 구호가 과연 시민 모두에게 유효할까요. 우리 모두 생애주기든, 개인의 삶의 방향이든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이직하기도, 퇴직하기도, 창업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전환은 우리의 관계와 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전환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누구와 함께 하고, 무엇을 실험해볼 수 있을까요? 

희망제작소는 소셜디자이너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전환기 시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공간·경제적 구조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품은 고민의 실마리를 '전환하는 시민, 전환하는 사회' 연재를 통해 나눕니다. 


1편 시민: 도대체 '참여'는 뭔가요?

2편 돈: 지원해주면 끝인가요?

3편 구조: 열정만으로 굴러가나요?

4편 공간: 지역으로 꼭 가야해요?

5편 공공: 행정은 관리자인가요?

6편 커뮤니티: 조건이 필요한가요?  

  • 전환기를 맞는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가 아니라 실험할 수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는 느슨한 관계, 실패 허용, 자율성과 공공성의 균형, 세대 간 연결을 갖춰야 해요. 
  • 소셜디자이너 프로그램은 커뮤니티 실험의 한 사례이며, 시민 스스로가 실험의 주체가 되는 구조를 지향해요.


누구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 첫 직장에 들어간 청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부모, 정년을 마친 시니어까지. 이들은 각자 다른 시점에, 다른 이유로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할 순간을 마주합니다.

이런 전환기에 필요한 것은 단지 ‘새로운 일’이나 ‘창업 지원금’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실험해볼 수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혼자서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시행착오가 허용되며, 실패 이후에도 이어갈 수 있는 관계가 유지되는 그런 환경 말입니다.

그런 커뮤니티가 없다면, 많은 사람들의 전환은 ‘시도조차 되지 못한 가능성’으로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지원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실험실’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어떤 커뮤니티가 시민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까

전환을 위한 커뮤니티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아닙니다. 사람, 자원, 제도, 시간이 함께 설계된 구조여야 합니다. 다음 네 가지 요소가 함께 있어야 전환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 느슨하지만 지속되는 관계: 매일 보지 않아도,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네트워크
  • 실험이 허용되는 구조: 성과를 측정하기보다, ‘시도할 수 있음’ 자체를 가치로 보는 문화
  • 공공성과 자율성의 균형: 공공자원을 활용하되, 시민이 기획과 실행의 주체가 되는 구조
  • 서로 다른 세대와 정체성의 만남: 다양성이 충돌이 아닌 창의성으로 이어지는 환경


이런 커뮤니티는 단발성이 아니라 삶의 흐름 속에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소셜디자이너’ 프로그램은 하나의 실험

희망제작소는 2024년부터 ‘소셜디자이너클럽’을 운영하며, 전국 각지의 실험가들과 함께 커뮤니티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이 실험의 핵심은 단순히 활동을 돕는 것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을 시도하고, 서로의 실험을 연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 서울 수도권에서는 커피찌꺼기를 활용해 인테리어 소품과 연필 등 실용품을 제작합니다. 커피찌꺼기를 수거하는 과정에 취약계층과 협력하고, 생산하는 과정에는 교육과 연대생산 방식으로 기존의 집중적 권한을 분산합니다.
  • 홍성에서는 지역 생산 농산물의 새로운 유통구조를 모색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 문경에서는 베이커리카페가 지역청년의 의제와 지역문제를 나누는 커뮤니티의 장으로 확장됩니다.
  • 홍천에서는 농촌 지역사회의 쓰레기 수거 모델을 환경 교육과 병행해 분리배출 인식을 높이고 쓰레기 수거 활동을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합니다. 쓰레기 수거 과정에서는 독거노인 돌봄기능까지 수행합니다.
  • 곡성에서는 청년 관계인구를 만들고, 지역사회 정착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 단위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 부산에서는 고립청년들과 관계 형성을 위해 수프와 워크숍 도구로 대화모임을 개최합니다. 또 문화소외계층을 위해 밴드 결성을 지원하고 공연 문화 저변을 넓혀갑니다.
  • 이외에도 중증 질병을 앓고 있는 동료의 투병 과정에서 고립된 아픈 청년들의 투병기를 모아 투병문화 매거진을 발간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합니다. 지역사회 환경인식 변화를 위해 제로웨이스트 샵을 운영하고, 친환경 활동을 촉진합니다. 지역사회 어르신과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해 어르신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 프로젝트들은 공통적으로 ‘문제를 가진 사람이 해결자이기도 하다’는 관점에서 시작됐고, 활동 과정에서도 지역사회와 느슨한 네트워크로 이어져 서로의 실험을 응원하고 확산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소셜디자이너클럽은 완성된 모델은 아니지만, “전환은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공동의 구조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소셜디자이너클럷

전환은 사회를 바꾼다 – 실험이 쌓이면 제도가 된다

처음엔 작고 사적인 실험이었습니다. 무분별하게 배출되는 쓰레기를 모아내는 활동, 1인 가구의 식생활을 바꿔보려는 프로젝트, 어르신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워크숍, 청년의 외로움을 나누기 위한 글쓰기 모임 등.

하지만 이런 실험이 반복되고, 연결되고, 제도화되기 시작하면 그건 더 이상 개인의 전환이 아니라 ‘사회적 전환’이 됩니다.

예를 들어, 청년 관계인구를 만드는 활동에서 지역의 더 나은 일자리 유치를 위한 활동으로 확장되고,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던 쓰레기 수거장 관리 및 수거 활동이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결되어 지역사회 경제순환체계로 이어졌습니다. 간호사 분들의 지역사회 건강상담 활동은 지역사회돌봄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핀란드의 시민기본소득 실험도 몇몇 지역 커뮤니티의 실험이 제도적 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금방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을 쌓아 맺어지는 관계로 확장되는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는 미래 제도를 실험하는 플랫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사회가 진짜 ‘민주주의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시민의 전환은 곧 사회의 전환

지금의 사회는 전환기에 있는 시민들에게 충분히 안전한 실험의 조건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사회는, 그런 전환을 공적으로 함께 감당하고, 그 실험을 존중하고, 다음 실험이 이어지도록 연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그 시작은 거창한 법이나 정책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실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구조를 탐색하기 위해, 만들기 위해 기꺼이 실험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실험 과정에, 여러분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희망제작소 소셜디자이너 리포트(2025)  


글: 안영삼 사회혁신팀 팀장, 최나현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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