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으로 가라”, “창업하라”는 구호가 과연 시민 모두에게 유효할까요. 우리 모두 생애주기든, 개인의 삶의 방향이든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이직하기도, 퇴직하기도, 창업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전환은 우리의 관계와 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전환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누구와 함께 하고, 무엇을 실험해볼 수 있을까요?
희망제작소는 소셜디자이너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전환기 시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공간·경제적 구조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품은 고민의 실마리를 '전환하는 시민, 전환하는 사회' 연재를 통해 나눕니다.
1편 시민: 도대체 '참여'는 뭔가요?
2편 돈: 지원해주면 끝인가요?
3편 구조: 열정만으로 굴러가나요?
4편 공간: 지역으로 꼭 가야해요?
5편 공공: 행정은 관리자인가요? 핵심 모아보기 📙
- 시민의 전환은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공공의 역할 변화가 함께 있어야 가능해요.
- 벨기에 겐트와 서울혁신파크의 사례는 공공이 시민 제안을 구조화하고 제도화하는 방식을 보여줘요.
- 지역은 단지 공간이 아니라, 전환이 일어나는 관계의 무대여야 하며, 지속 가능성을 위한 커뮤니티 구조가 필요해요.
6편 커뮤니티: 조건이 필요한가요?
시민이 바뀌려면, 공공도 바뀌어야 한다
앞선 글에서는 시민이 스스로 삶의 전환을 기획하고, 일상의 반경 안에서 실험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시민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누군가는 공간을 열어줘야 하고, 누군가는 시도할 수 있는 자원을 연결해줘야 하며, 누군가는 실패를 지켜보며 다시 해보자고 말해줘야 합니다.
바로 이때, 행정과 지역사회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까지의 행정은 대개 ‘관리자’ 또는 ‘지원자’의 위치에 머물러 왔다는 것입니다. 시민을 ‘참여자’가 아닌 ‘대상자’로 바라보며,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구조를 유지해왔습니다. 이제는 그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공공은 ‘관리자’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실험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공공이 실험을 돕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실험 파트너’로서의 공공이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전환을 의미합니다.
- 정답을 제시하는 역할에서 → 시민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구조로
- 평가하는 주체에서 → 함께 배우는 동반자로
- 위임과 관리 중심의 행정에서 → 공감과 조율 중심의 거버넌스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공이 시민의 전환을 돕는 일은 단지 예산을 주거나 공간을 대여해주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시민이 실험할 수 있는 ‘시간, 장소, 사람, 제도’를 엮어주는 역할입니다. 예를 들어, 주민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는 대신, “이 아이디어가 실현되기 위해 제도를 어떻게 수정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시민이 실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유연하게 만드는 곳들
이런 역할 전환은 이미 일부 도시들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벨기에 겐트(Ghent)의 ‘커먼즈 시티’는 시민이 주도적으로 도시의 자원(토지, 에너지, 주거, 식량, 공공공간 등)을 공동으로 소유·관리·운영하는 다양한 ‘어반 커먼즈’(urban commons) 프로젝트가 집약된 도시 모델입니다. 겐트는 지난 10년간 약 500개의 커먼즈 기반 프로젝트가 등장할 정도로 주민이 스스로 운영하는 공유 공간, 커뮤니티 정원, 협동조합 등을 시의 공식 거버넌스 구조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겐트시는 커먼즈 기반 실험을 지원하는 전담 부서를 운영하며, 시민 주도의 자산 관리나 프로그램 운영에 공공부문이 실질적인 파트너로 개입합니다. ‘커먼즈 어코드’(Commons Accord) 등 시민과 시가 공식 협약을 맺고, 규제 개선·법률 지원·공공재정 지원 등 제도적으로 지원하는데, 경쟁이 아닌 ‘커먼즈 제안 요청(call for commons)’ 방식으로 여러 주체가 연합해 협력적 솔루션을 제안하면, 시가 지원합니다. 시 정부는 ‘파트너 도시’로서 시민 커먼즈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일방적 통제 대신 협력적 관계를 지향합니다.

https://stad.gent/nl 홈페이지 갈무리
이외에도 시민과 시가 협약을 맺고, 공원·유휴공간 등 도시 자원을 공동 관리해 관료주의를 줄이고, 시민이 직접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이탈리아 볼로냐 ‘협력규약(Pacts of Collaboration)’ 사례와 조합원이 직접 노동에 참여하고, 저렴한 식료품을 공동구매해 제공하며 커뮤니티 결속과 상호지원을 강화하는 뉴욕의 Park Slope Food Coop 사례, 도시 빈민가에서 주민이 직접 공공공간(다리, 정원, 화장실 등)을 공동 관리·운영하며, 생활환경 개선과 공동체 강화를 도모하는 케냐 키베라 ‘KPSP’ 사례가 있습니다.
디지털 거버넌스로 유명한 사례는 2016년 바르셀로나 시의회에서 출범한 데시딤(Decidim)입니다. 기술과 정치가 접목된 ‘테크노폴리틱스(Technopolitics)’를 활용한 오픈 소스 플랫폼으로 시의회는 데시딤에 올라온 청원서, 각종 투표 결과를 검토한 뒤 실제 정책에 반영합니다. 먼저 시의회에서 거시적 정책 계획이나 의제에 대한 내용이 올라오면, 시민이 ‘참여’ 버튼을 눌러 정책 결정 과정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 의견과 청원을 내고, 시민 아이디어와 제안을 취합해 실제 정책을 만드는 데 활용합니다. 정책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시민이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례들은 공공이 실험의 ‘심사자’가 아닌 ‘공동실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도 시민·사회적경제 조직이 공공자원(공유주택, 공유오피스, 공유부엌 등)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겐트처럼 시민 주도적 거버넌스와 제도적 협약이 체계화된 수준은 아닙니다. 온라인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은 여러 지방정부에서도 실행하고 있습니다. 상상대로 서울, 참여의큰숲(서울 은평구), 대전시소 등 시민의 의견을 제안하고 토론하는 창구가 열려있습니다. 하지만, 행정과 의회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정책 과정에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창구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시설물 개보수나 환경 개선 등의 역할도 있지만, 제도나 정책이 지역사회의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생활 반경, 시민사회와의 실천과 협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협력 과정에서 시민이 실험자로, 기획자로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은 실험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행정만 바뀌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민의 전환이 지속되려면, 지역 커뮤니티가 실험을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이란 단위가 단지 공간의 경계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와 연결의 장이라는 점입니다. 지역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 실험의 파일럿 장소: 작은 실패가 가능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 연결의 촉진자: 행정과 시민 사이를 조율할 지역 내 중간지원 조직이 있어야 한다
- 지속의 담보자: 사람이 바뀌어도 활동이 이어질 수 있는 커뮤니티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행정이 시민 실험을 인큐베이팅하고, 지역이 실행의 무대를 제공할 때 비로소 시민의 전환은 개인의 변화가 아닌 사회적 구조 변화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지금이 전환할 시간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수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지역소멸, 고령화, 불평등.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지 더 많은 예산이나 더 정교한 제도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시민 개개인의 삶을 바꾸는 실험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 유연하게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그 실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공은 그 앞에 나서기보다 곁에서 함께 설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시민이 변하려 할 때, 행정은 묻고 기다리고 돕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지역은 머무르고 시도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실험장이 되어야 합니다.
출처
Commons Transition Plan, City of Ghent (2017)
Regenerative Economics, 4.2.3 Urban commons and relocalisation
‘디지털’과 ‘거버넌스’ 만난 시민 중심 사회 바르셀로나
글: 안영삼 사회혁신팀 팀장, 최나현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
“지역으로 가라”, “창업하라”는 구호가 과연 시민 모두에게 유효할까요. 우리 모두 생애주기든, 개인의 삶의 방향이든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이직하기도, 퇴직하기도, 창업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전환은 우리의 관계와 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전환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누구와 함께 하고, 무엇을 실험해볼 수 있을까요?
희망제작소는 소셜디자이너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전환기 시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공간·경제적 구조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품은 고민의 실마리를 '전환하는 시민, 전환하는 사회' 연재를 통해 나눕니다.
1편 시민: 도대체 '참여'는 뭔가요?
2편 돈: 지원해주면 끝인가요?
3편 구조: 열정만으로 굴러가나요?
4편 공간: 지역으로 꼭 가야해요?
5편 공공: 행정은 관리자인가요? 핵심 모아보기 📙
6편 커뮤니티: 조건이 필요한가요?
앞선 글에서는 시민이 스스로 삶의 전환을 기획하고, 일상의 반경 안에서 실험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시민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누군가는 공간을 열어줘야 하고, 누군가는 시도할 수 있는 자원을 연결해줘야 하며, 누군가는 실패를 지켜보며 다시 해보자고 말해줘야 합니다.
바로 이때, 행정과 지역사회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까지의 행정은 대개 ‘관리자’ 또는 ‘지원자’의 위치에 머물러 왔다는 것입니다. 시민을 ‘참여자’가 아닌 ‘대상자’로 바라보며,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구조를 유지해왔습니다. 이제는 그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공공은 ‘관리자’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실험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실험 파트너’로서의 공공이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공이 시민의 전환을 돕는 일은 단지 예산을 주거나 공간을 대여해주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시민이 실험할 수 있는 ‘시간, 장소, 사람, 제도’를 엮어주는 역할입니다. 예를 들어, 주민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는 대신, “이 아이디어가 실현되기 위해 제도를 어떻게 수정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런 역할 전환은 이미 일부 도시들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벨기에 겐트(Ghent)의 ‘커먼즈 시티’는 시민이 주도적으로 도시의 자원(토지, 에너지, 주거, 식량, 공공공간 등)을 공동으로 소유·관리·운영하는 다양한 ‘어반 커먼즈’(urban commons) 프로젝트가 집약된 도시 모델입니다. 겐트는 지난 10년간 약 500개의 커먼즈 기반 프로젝트가 등장할 정도로 주민이 스스로 운영하는 공유 공간, 커뮤니티 정원, 협동조합 등을 시의 공식 거버넌스 구조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겐트시는 커먼즈 기반 실험을 지원하는 전담 부서를 운영하며, 시민 주도의 자산 관리나 프로그램 운영에 공공부문이 실질적인 파트너로 개입합니다. ‘커먼즈 어코드’(Commons Accord) 등 시민과 시가 공식 협약을 맺고, 규제 개선·법률 지원·공공재정 지원 등 제도적으로 지원하는데, 경쟁이 아닌 ‘커먼즈 제안 요청(call for commons)’ 방식으로 여러 주체가 연합해 협력적 솔루션을 제안하면, 시가 지원합니다. 시 정부는 ‘파트너 도시’로서 시민 커먼즈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일방적 통제 대신 협력적 관계를 지향합니다.
https://stad.gent/nl 홈페이지 갈무리
이외에도 시민과 시가 협약을 맺고, 공원·유휴공간 등 도시 자원을 공동 관리해 관료주의를 줄이고, 시민이 직접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이탈리아 볼로냐 ‘협력규약(Pacts of Collaboration)’ 사례와 조합원이 직접 노동에 참여하고, 저렴한 식료품을 공동구매해 제공하며 커뮤니티 결속과 상호지원을 강화하는 뉴욕의 Park Slope Food Coop 사례, 도시 빈민가에서 주민이 직접 공공공간(다리, 정원, 화장실 등)을 공동 관리·운영하며, 생활환경 개선과 공동체 강화를 도모하는 케냐 키베라 ‘KPSP’ 사례가 있습니다.
디지털 거버넌스로 유명한 사례는 2016년 바르셀로나 시의회에서 출범한 데시딤(Decidim)입니다. 기술과 정치가 접목된 ‘테크노폴리틱스(Technopolitics)’를 활용한 오픈 소스 플랫폼으로 시의회는 데시딤에 올라온 청원서, 각종 투표 결과를 검토한 뒤 실제 정책에 반영합니다. 먼저 시의회에서 거시적 정책 계획이나 의제에 대한 내용이 올라오면, 시민이 ‘참여’ 버튼을 눌러 정책 결정 과정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 의견과 청원을 내고, 시민 아이디어와 제안을 취합해 실제 정책을 만드는 데 활용합니다. 정책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시민이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례들은 공공이 실험의 ‘심사자’가 아닌 ‘공동실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도 시민·사회적경제 조직이 공공자원(공유주택, 공유오피스, 공유부엌 등)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겐트처럼 시민 주도적 거버넌스와 제도적 협약이 체계화된 수준은 아닙니다. 온라인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은 여러 지방정부에서도 실행하고 있습니다. 상상대로 서울, 참여의큰숲(서울 은평구), 대전시소 등 시민의 의견을 제안하고 토론하는 창구가 열려있습니다. 하지만, 행정과 의회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정책 과정에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창구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시설물 개보수나 환경 개선 등의 역할도 있지만, 제도나 정책이 지역사회의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생활 반경, 시민사회와의 실천과 협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협력 과정에서 시민이 실험자로, 기획자로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정만 바뀌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민의 전환이 지속되려면, 지역 커뮤니티가 실험을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이란 단위가 단지 공간의 경계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와 연결의 장이라는 점입니다. 지역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행정이 시민 실험을 인큐베이팅하고, 지역이 실행의 무대를 제공할 때 비로소 시민의 전환은 개인의 변화가 아닌 사회적 구조 변화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수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지역소멸, 고령화, 불평등.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지 더 많은 예산이나 더 정교한 제도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시민 개개인의 삶을 바꾸는 실험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 유연하게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그 실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공은 그 앞에 나서기보다 곁에서 함께 설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시민이 변하려 할 때, 행정은 묻고 기다리고 돕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지역은 머무르고 시도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실험장이 되어야 합니다.
출처
Commons Transition Plan, City of Ghent (2017)
Regenerative Economics, 4.2.3 Urban commons and relocalisation
‘디지털’과 ‘거버넌스’ 만난 시민 중심 사회 바르셀로나
글: 안영삼 사회혁신팀 팀장, 최나현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