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시민 활동은 열정만으로는 어렵죠

2025-07-14

“지역으로 가라”, “창업하라”는 구호가 과연 시민 모두에게 유효할까요. 우리 모두 생애주기든, 개인의 삶의 방향이든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이직하기도, 퇴직하기도, 창업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전환은 우리의 관계와 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전환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누구와 함께 하고, 무엇을 실험해볼 수 있을까요? 

희망제작소는 소셜디자이너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전환기 시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공간·경제적 구조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품은 고민의 실마리를 '전환하는 시민, 전환하는 사회' 연재를 통해 나눕니다. 


1편 시민: 도대체 '참여'는 뭔가요?

2편 돈: 지원해주면 끝인가요?

3편 구조: 열정만으로 굴러가나요?  핵심 모아보기 📙 

  • 시민활동은 열정만으로는 지속되지 않아요. 구조와 순환이 필요해요. 
  • 공공 예산이 행정 중심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순환되고 시민이 설계하는 구조가 된다면 어떨까. 
  • 시민활동의 지속성은 예산의 ‘지원’이 아니라, 기획과 순환의 구조에 달려 있어요.

4편 공간: 지역으로 꼭 가야해요?

5편 공공: 행정은 관리자인가요?

6편 커뮤니티: 조건이 필요한가요?



시민이 한 번 무언가를 해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 동네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은 프로그램, 지역 어르신과 나누는 주말 밥상. 이런 활동은 대부분 열정과 자발성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처음엔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1~2년 뒤엔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왜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지속할 수 있는 구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회성 공모사업은 끝나고, 공간은 대관이 어렵고, 자원은 다시 찾기 어렵고, 함께했던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집니다. 처음의 열정은 있었지만, 그걸 지역 안에서 묶어주고 순환시켜주는 시스템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순환구조의 부재는 기록의 부재로도 이어집니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는 공유되지 않고 사라지며, 다음 시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시민활동을 ‘열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지역 순환 모델과 커뮤니티 기반 기금입니다. 이는 단순히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지역 내 다양한 실험을 촉진하고 순환시키는 자금 생태계 입니다.


돈이 흐르는 방향이 시민의 힘을 결정한다

예산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산의 ‘양’이 아니라 흐름과 방식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공공 예산은 행정이 설계하고, 시민은 그 안에 ‘공모’해서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은 기획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됩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예산이 지역 안에서 순환하고, 시민이 기획의 주체가 되는 실험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프레스턴 모델(Preston Model)’입니다.

이 모델은 지역 내 공공기관(병원, 학교, 시청 등)이 지역 기업이나 협동조합에 우선적으로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정책을 바꾼 것입니다. 그 결과, 예산이 외부 대기업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안에서 고용과 활동이 순환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예산의 흐름을 바꾸기만 해도, 지역 주민이 기획자이자 생산자가 되고, 시민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경제 기반이 마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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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S(영국 지역경제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이 설계하는 기금, 커뮤니티 기반 펀드

순환경제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바로 시민이 운영 주체가 되는 기금 구조입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공모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아이디어를 내고, 돈을 모으고, 때로는 기부를 받고, 그걸 실행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호주의 로건투게더(Logan Together)는 좋은 사례입니다. 이곳은 아동과 가족을 위한 지역사회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 펀드인데, 공공기관, 시민단체, 기업, 주민이 공동으로 설계하고 집행합니다. 누구의 문제인지 명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민 주도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은 정부 지원, 민간 펀딩, 공동 출자 등을 통해 마련되고, 기금 사용 내역은 주민들과 투명하게 공유됩니다.

연 5만 유로의 시민기금(Bürgerfonds)으로 시민, 단체, 모임, 개인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실행할 수 있는 브랜디저 시민기금도 참고할만한 사례입니다. 디지털 ‘Mit-Mach-Plattform’(참여 플랫폼)과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시민들이 프로젝트를 기획·실행하고, 정기적 네트워킹(예: 월 2회 모임)도 이루어집니다. 대표적으로 동네 공원 가꾸기, 지역 역사 워크숍, 커뮤니티 축제, 녹지 공간 조성, 환경 캠페인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주제의 프로젝트를 지원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지역에서 운영되는 시민주도형 커뮤니티 투자펀드, Boston Ujima Fund는 대표적인 시민주도형 커뮤니티 투자펀드입니다. 이 펀드는 지역 주민, 소상공인, 노동자 등이 직접 투자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로 운영되는데, 투자 우선순위와 대상을 정하는 커뮤니티 표준위원회와 투자위원회가 있으며, 모든 투표권 회원은 투자액과 상관없이 1인 1표를 행사합니다. 

커뮤니티 주도의 계획 수립, 사업 선정, 네트워크 구축 등 다양한 조직화 활동을 지원하며, 새로운 경제·사회 모델의 실험장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실험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권력이 점점 더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시민의 삶의 방식과 커뮤니티 규범 자체가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일회성 공모가 아니라, 시민 실험이 다음 단계로 이어지고, 다른 시민에게도 자산이 되도록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시민이 직접 기획하고 관리하는 커뮤니티 기반 펀드는 행정 중심 지원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지속적인 시민활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처럼 시민 실험은 구조가 있으면 계속됩니다.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여유, 실패를 나눌 수 있는 동료, 경험이 제도에 반영되는 피드백 루프. 이 모든 조건이 갖춰졌을 때, 시민은 진짜로 기획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기획은 공동체 안에서 단절되지 않고 순환하는 자산이 됩니다.


지금 한국에는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우리나라는 아직 시민이 직접 기획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본격적인 커뮤니티 펀드는 아직 드뭅니다. 하지만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펀드, 지역 벤처투자 네트워크 등 시민과 지역사회가 자본조성 및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례들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델들은 지역경제 활성화, 사회문제 해결, 공동체 강화 등 시민 실험으로 사회의 전환을 촉진하는데 마중물이자 지속적으로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입니다.

시민이 예산을 직접 설계하고, 지역 안에서 활동으로 이어져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순환형 기금 모델이 필요합니다. 프레스턴 모델처럼 공공조달을 지역 중심으로 재편하거나, 로건투게더와 보스턴 우지마 펀드처럼 시민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설계하는 펀드 조성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촉진하고, 활동의 과정과 결과가 지역사회에서 순환하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출처

Logan Together 공식 자료집, Griffith University, 2021 

“Community Wealth Building and the Preston Model”, CLES(영국 지역경제센터), 2019


글: 안영삼 사회혁신팀 팀장, 최나현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커뮤니티: 조건이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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