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서울중심주의' 인간인지, 지방살이하고 알았어요.”

2026-08-06

『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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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서울중심주의' 인간인지, 지방살이하고 알았어요.”
전소현 ‘로컬생활자’ 대표 @전주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른 두개? 전소현 대표의 이름 옆에는 여러 단어가 따라붙습니다. 에디터, 문화기획자, 로컬경험디자이너, ‘집 없는 게 취미인 사람’까지. 전주, 거제, 부여, 인천 등을 오가며 살아온 경로만 들어도, 하나의 단어에 전부 담을 수 없는 시간과 경험이 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지역살이 고수의 향기가 납니다. 그중 가장 자주 사용하는 소갯말은 ‘로컬생활자 소피’입니다. 여러 지역에 발 딛고 살며, 생활자의 시선으로 동네의 장면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온 이름이랍니다.


그 시작에는 전주가 있습니다. 2020년 지역살이 프로그램으로 처음 서울 바깥의 삶을 만난 이후, 전소현 대표는 한 가지 질문을 붙잡게 됐습니다. “왜 지역에서 사는 일이 낯설고 특별한 선택처럼 여겨지는 거지?” 여러 지역을 경험하고 생활자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지역에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로컬생활자 소피’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정보와 사람, 실험을 기록하고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로컬을 ‘청년이 가야 할 곳’, ‘관광객이 찾아갈 곳’, ‘창업자가 기회를 찾는 곳’으로만 접근할 때, 쉽게 납작해지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전소현 대표는 그 이야기들을 기록하며, 다음 사람이 조금 덜 헤매고 조금 더 깊이 지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남깁니다. 때로는 뾰족하고, 때로는 둥그렇고, 때로는 치열하고, 또 때로는 따뜻합니다. 로컬 콘텐츠 기획과 출판, 워크숍,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로컬데이즈’의 대표이자, 로컬 아카이빙 미디어 ‘로그인로컬’의 메인 에디터, 전소현(소피) 소셜디자이너를 전주에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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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는게 취미’인 ‘로컬생활자 소피’로 활동하고 있는 전소현 대표.로컬지향스튜디오 ‘ 로컬데이즈’의 대표이자 편집장이다.  ⓒ희망제작소




 “국내에 여행 갈 곳이 있나?” 생각하던 서울 청년이 전주에서 발견한 질문


- 원래는 서울에서  자라셨다고요. 첫 지역살이 경험이 엄청난 전환점이었나봐요.


= 2020년에 ‘라이프테스트배드(Life-Test-Bed)’라는 프로그램으로 전주에서 6개월 간 체류한 게 첫 지역살이 경험이었어요. 반 년동안 공동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꼭 학교나 직장에서만 일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 나는 자아실현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구나’,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구나’ 같은 걸 알게 됐죠. 제가 ‘실행파’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됐어요. 직접 현장에 가서 눈으로 보고, 사람에게 물어보고,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봐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경험은 지역 불균형을 처음 제대로 마주한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저는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서울 안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지역 문제는 커녕, 지역 자체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죠. 심지어 “국내에 여행갈 곳이 있나? 음식만 다르고 다 똑같지 않나? 여행 갈 거면 해외로 가야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니까요! (하하)


지역살이 프로그램에서 난생 처음 기획이란 걸 해보고, 사람도 모아보고, 이런 저런 실험을 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어요. 그 후에 서울로 돌아갔는데 자꾸 전주에서의 장면들이 아른거리는거예요. 지역을 경험한 뒤의 내가, 지역 문제를 전혀 모르던 때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남았던 것 같아요. 그때 제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것이 갖춰졌지만 한 켠의 불평등과 차별을 모르고 계속 서울에서 경쟁하며 살 것이냐, 모든 것이 우당탕탕 서툴고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 수 있는 기회와 여유가 있는 지역에서 살 것이냐. 저에겐 후자가 더 맞겠다고 판단했죠.



- ‘로컬생활자 소피’라는 정체성도 전주에서 첫 지역살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만들었다고요?


= 전주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사람을 모아 실행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지역의 정보와 사람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좋은 프로그램과 시도는 분명히 있는데, 그 소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잘 닿지 않는 거예요. 특히 지역 활동이나 지원 사업의 홍보가 사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대체로 운영자 입장에서 올리는 “이런 프로그램을 합니다”, “1주차에 무엇을 했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라는 게시글만 남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람을 모아도 잘 안 되고, 와도 늘 오던 사람만 오는 일이 반복됐어요.


그래서 ‘로컬생활자’라는 브랜드와 ‘소피’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주인공 이름인데, ‘소피’라는 캐릭터처럼 성격처럼 인생의 걸림돌을 헤쳐나가며 타인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 특정 문제를 뾰족하게 전달하는 일은 이미 더 잘하는 단체들이 있으니, 저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과 정보, 사람을 친근하게 전하는 친구 같은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원래도 좋은 사업이나 정책, 도움 되는 정보나 일자리를 발견하면 SNS에 올리거나 친구에게 직접 보내주는 걸 좋아하고, 잘했거든요.


“이거 너무 중요하니까 꼭 해야 해. 왜 안 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 이거 해봤는데 재밌더라”, “이런 사람을 만났는데 좋더라” 하고 한 사람의 경험으로 전할 때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고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로컬생활자 소피라는 이름으로 지역에 들어온 첫 순간부터 고민과 과정, 우여곡절을 기록해서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기관이나 운영자의 언어로는 닿지 않던 이야기도, 그곳에서 직접 살아보는 생활자의 시선과 언어로 전하면 다르게 닿는다는 걸 느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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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지역살이를 경험한 전주에서 활동하던 시기 ⓒ전소현



“서울은 성공, 지방은 리틀포레스트가 아니잖아요. 모든 지역은 각자 자기만의 의미와 서사가 있으니까요.”


- 전주 이후 거제, 부여, 제주, 인천 등 다양한 지역에서 지역살이를 경험했어요. 그 시간을 지나며 ‘로컬생활자 소피’는 어떤 질문을 갖게 됐나요?


= 2021년에는 거제도 ‘청년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짧은 체류만으로는 지역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과정을 충분히 다루기 어렵다는 것도 느꼈어요. 정착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저처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청년이 지역에 들어와 실제로 남거나, 남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경험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그 답을 찾고 싶어서 12개 지역의 운영자와 경험자를 찾아가 인터뷰하기 시작했어요. 누가 돈을 준 것도, 시킨 것도 아닌데 순전히 제가 궁금해서요(하하). 제가 느낀 불편함이 개인적인 감상인지, 아니면 지역살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어려움인지 알고 싶었거든요. 그 배경이 된건 <청년활동가 연구보고서> 참여 경험이예요. 그때 지역에 대해 고민하려면 ‘전국 단위’로 봐야겠다,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면 ‘심층 인터뷰’로 접근해야한다는 걸 배웠거든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지역 이주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에 대한 제 나름의 데이터와 가설이 생겼어요. 그중 하나가 ‘로컬 온보딩의 부재’예요. 온보딩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 과정이잖아요. 지역살이에도 그런 구조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지역에 들어갔을 때 어떤 정보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적응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을 누구와 나눌 수 있는지, 지역 안에서 어떤 관계와 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함께 안내하고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그 공백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로컬데이즈’라는 회사를 만들게 된 걸까요? 지역을 다니고 사람을 만나며,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 여러 지역을 거치며 제 역할도 조금씩 분명해졌어요. 저는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사는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계속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먹고살고 싶지?”를 물어야 했거든요. ‘여행 크리에이터’가 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럴거면 제가 ‘생활자’가 될 이유가 없죠. 제가 필요하다고 느낀 건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당사자로서 겪은 문제를 더 중심부에서 다루고 알려야 한다는 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단순히  ‘지역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나 ‘잠깐 체류하여 소비만 하고 가는사람’이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지역을 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입구'의 역할로 방향성을 잡았어요. 


실제 ‘생활자’인 당사자들을 만나기 위해 네트워킹, 컨퍼런스, 워크숍 같은 자리에도 많이 갔고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하나의 지역 안에도 정말 다양한 관점과 주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 생각과 입장을 정리하려면 더 많이 만나고, 듣고, 공부해야겠다고 느꼈죠.


그 고민 끝에 2024년에 ‘로컬 지향 커뮤니티’라는 슬로건으로 ‘로컬데이즈’라는 회사를 만들었어요. 로컬의 ‘어벤져스’를 모으고 싶었거든요. 각자의 방식으로 지역에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면, 혼자서는 보지 못했던 길이나 다음 실험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어요. 저는 여기에서 대표이자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면서 지역의 소외된 목소리와 이야기를 드러내고, 서울 밖에서도 다양한 삶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콘텐츠를 생산하고요.



- 지역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이 그렇듯, 소현님도 ‘프로N잡러’이신 것 같아요(하하.)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 지금은 전주를 기반으로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은 로컬 아카이빙 미디어 ‘로그인로컬’의 메인 에디터 역할이에요. 전주의 사람과 공간, 동네의 장면을 기록하고, 전주국제영화제 시즌에는 팝업 전시를 만들기도 했어요. 전주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지도나 매거진 작업도 하고 있고요. 


개인 활동으로 ‘로컬생활자 소피’가 운영하는 ‘로컬데이즈’도 바쁘게 하고 있는데, 이번에 로컬 문화예술 매거진 〈Beyond L〉 창간호를 만들어 펀딩을 받았거든요. 서울 사람인 제가 만든 이 세상에 없던 로컬 매거진이예요. 8개 지역, 8명의 작가, 판형과 제작 방식이 완전히 다른 8개의 작품(대본집, 웹툰, 사진집, 소설 등)이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요. 규격화되지 않은 로컬의 진짜 삶들을 한 권의 패키지로 보여주는 거죠. 손으로 접고, 끼워넣고, 자르고, 직접 손이 안 간 구석 없이 신경 쓸게 많아서 애정이 가는 작업이예요.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도 하죠. 지역살이를 꿈꾸는 사람과 이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만나거나, 서울 밖에서 자기 일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요. 인천에서는 동네 이야기를 담은 ‘동네 달력’ 프로젝트와 지역에서 참고할 만한 사람을 찾는 ‘서사수’를 시도했고, 최근 전주에서는 ‘이방인의 글방’을 열고 있고요.


겉으로 보면 일이 여러 갈래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다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지역에 들어온 사람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헤매지 않도록 사람과 정보, 일의 경로를 보이게 하는 일. 그리고 지역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잘 닿게 하는 일. 그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가장 가까운 설명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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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생활자 소피가 기획한 로컬데이즈의 창간호 <비욘드 L>는 8개 지역, 8명 작가, 8개 작품으로 구성된 매거진이다. 7월 3일, 116% 달성률로 펀딩을 마감하고 발송을 준비중이다. ⓒ로컬데이즈




서울 중심 세상에서, ‘정답’이 아닌 ‘경로’를 보여주는 일을 하고 싶어서


- 작년에 출간한 『복닥맨션』이라는 책도 그 연장에 있는거군요! “서울 밖에서 살면 어때서?” 책 소갯말이 인상적이예요. 역시 지역을 하나의 이미지로 말하지 않기 위한 시도로 보이고요. 


= 처음에는 저도 ‘지방소멸은 문제다’, ‘그래서 사람이 지역으로 더 많이 가야 하고, 청년 유입이나 관광 활성화처럼 수를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게 당연히 답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지역에서 당사자가 되어보니 지역 소멸을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같은 지역 안에서도 누가 어떤 맥락으로, 어떤 장면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로컬’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로컬은 관광, 창업, 브랜딩 같은 이미지로 쉽게 정리되곤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 지역에서의 삶은 훨씬 다양해서 하나의 말로 담기지 않아요. 그래서 “서울 밖에서 살면 어때서?”라는 질문을 던지는 『복닥맨션』을 만들게 됐어요. ‘나’의 이야기가 곧 ‘지역’의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서울을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주생활자, 이주정착자, 고향생활자, 로컬크리에이터 14명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죠. 외지인과 토박이, 이주와 정착처럼 지역을 단순하게 나누고 싶지 않았고, 생활자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말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이라는 방법은 처음 시도 해봤는데 이전과 다른 효능감이 있었어요. 이야기가 흘러가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대화의 자리가 되더라고요. 『복닥맨션』 책으로 8개 지역에서 북토크를 했는데, 참여자들 역시 ‘로컬’에 관심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이유로 오는 건 아니더라고요. 지역살이 경험으로 출판 해보고 싶은 사람, 지역소멸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 심지어 자기 지역 이름이 나와서 온 사람까지 정말 다양한 이들이 그 단어 하나를 매개로 모였어요. 그때 느꼈어요. ‘로컬’이라는 단어를 잘 풀어내면, 서로 다른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와 다음 경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요. 그때 제가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감각도 조금 더 분명해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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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콘텐츠, 기획, 문화를 키워드로 워크숍, 강연, 컨퍼런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소현(소피) 대표  ⓒ전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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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대구에서 <복닥맨션>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는 전소현 대표 ⓒ전소현



- 스스로를 ‘플랫폼’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소현 님이 말하는 ‘플랫폼’은 어떤 무엇인가요?


= 제가 지역에서 하고 있는 역할이 기차 역에 있는 ‘전광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출도착지 정보가 뜨면 이용객들이 그걸 보면서 자기가 필요한 경로를 확인해 찾아가잖아요. 지역에서도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관광, 문화기획, 도시재생, 사회혁신, 중간지원조직, 이주민/원주민 커뮤니티가 다 따로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 지역 안에서는 서로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거든요. 분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요. 그 연결이 한 눈에 보일 때 자기에게 맞는 방향도 잘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지역에 와서야 중간지원조직이라는 존재를 알게 됐고, 지역 안에 어떤 프로그램과 일의 기회가 있는지도 부딪히며 알게 됐어요. 지역으로 이주하는 청년들은 보통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와요. “나만이 할 수 있는 액션”을 원하죠. 지역에 있는 단체와 조직들도 함께할 사람을 찾고 있는데 이 두 그룹 사이의 접점이 잘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정보와 사람, 일의 경로가 더 잘 보이게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다만 제가 또 하나의 프레임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로컬은 이런 거야”라고 말해버리면 또 다른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만드는 콘텐츠도 지역을 수단화하거나 소비시키고 싶지 않다는 방향성이 분명히 있어요. 그럼에도 제 역할은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관점과 경로를 보여주는 사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다양하고 입체적인 지역의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 콘텐츠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여는 일이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그 성과에 대한 질문받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소현 님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 수치로 환원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예산의 적절성이나 성과를 확인하는 기준은 필요하죠. 그런데 저는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를 성과로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제정의가 발견된 것, 경로가 확장된 것, 이해관계자 풀이 늘어난 것, 레퍼런스가 생긴 것. 그런 걸 잘 남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성과를 참여자 수나 매출 같은 규모로만 보면 담을 수 없는 부분이 많아요.


지역에서는 오히려 작은 변화가 더 직관적으로 드러날 때가 있어요. 하루에 300명이 오간 것보다, 그동안 한 번도 오지 않았던 동네 주민 3명이 와서 “좋았다”,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게 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때도 있거든요. 일의 크기가 아니라, 작은 실행이라도 당사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이게 필요하구나”, “같이 해볼 수 있겠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중요하죠. 사업을 진행한 사람이 “잘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효과를 경험한 사람이 자기 말로 이야기해줄 때 더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매일 하나씩 쌓이는 작은 실행, 관계 맺기, 실험이 계속될 수 있게 하는 과정 자체도 성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소현님이 말하는 플랫폼은 지역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사람과 일, 정보와 사례를 발견할 수 있는 연결 구조에 가까워 보이네요.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 지역에 관심 있는 청년은 많아졌지만, 막상 지역과 만나는 경로는 여전히 제한적이라고 느껴요. 워케이션이나 체류 프로그램처럼 잠깐 발을 담가보는 기회는 있지만, 그 경험만으로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거나 일하기는 어렵거든요. 여전히 누군가 붙잡고 하나하나 물어봐야 해요. 알음알음, 커뮤니티, 운에 기대면서 우당탕탕 살아남는 구조인 거죠.


제가 만들고 싶은 플랫폼은 그 경로를 조금 더 잘 보이게 하는 일이에요. 지역에 관심 있는 사람이 지역 ‘생활자’를 찾아 커피챗을 요청할 수도 있고, ‘생활자’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자기 역량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지원할 수도 있고, 중간지원조직이나 지역 단체처럼 함께 일할 수 있는 조직을 쉽게 알게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콘텐츠를 모으는 데서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더 본격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일본에는 지역살이와 지역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플랫폼 사례가 비교적 잘 되어 있거든요. 내년쯤에는 일본에 가서 그런 활동을 직접 보고 연구해서, 제가 상상하는 지역 생활자의 콘텐츠가 한 눈에 보이는 플랫폼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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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지역과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일로 풀어가는 사람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하고, 이들을 발굴·연결해왔습니다. 2026년에는 KB금융그룹과 함께 청년이 지역에서 자기 일을 만들고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이 인터뷰는 2026 소셜디자이너 사업과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로 이어지는 여정의 일부로 제작되었습니다.



인터뷰 및 글ㅣ 최나현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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