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이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느린학습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조례제정까지 ‘빠른 걸음’
느린소리 최수진 대표 @춘천
느린학습자를 아시나요? 지능지수 71~84로 판단하는 경계선지능보다 폭넓은 의미랍니다. 강원도 춘천에서 경계선지능인과 느린학습자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느린소리’의 최수진 대표가 공부해 보니, 전체 인구의 13.59%를 차지했습니다. 한 반에 3~4명 꼴인 셈이죠. 최 대표는 ‘느린학습자’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인지, 언어, 작업 치료까지 발 동동 구르며 감당했답니다. 춘천에 부모 모임도 없어 관련 정보도 구하기 힘들었다는군요. ‘이게 나만의 문제일까?’ 이렇게 2022년 시작한 사단법인 ‘느린소리’는 네트워크 구축, 학교 프로그램 개발부터 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 제정까지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느린소리가 입주해 있는 커먼즈필드 춘천에서 최수진 대표를 만났습니다.

커먼즈필드 춘천 비즈니스 오피스에서 만난 느린소리 최수진 대표 ⓒ희망제작소
-‘느린소리’를 소개해주신다면.
=강원도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인근 군 단위에서도 저희 센터를 방문하고, 학교나 교사 교육은 전국 어디든 요청이 있으면 갑니다. 저희는 느린학습자를 위한 생애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어요. 유아기부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거든요. 무엇보다 저희가 가치를 두는 건 느린학습자의 자립입니다. 느린학습자 청년 당사자들을 만나보면 자립에 대한 욕구가 커요. 부모님들은 '내가 하루라도 더 살고 죽겠다'라는 말씀을 하시고요. 그래서 유아기 활동부터 모든 활동이 자립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느린학습자를 키우는 엄마예요. 2021년 즈음, 수도권과 달리 강원도에선 느린학습자란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병원에서도 생소해했고요. 학교, 복지기관 문을 두드렸는데 모르더라고요. 교육청에서는 '느린학습자가 뭐예요?'라고 저한테 물었어요. 느린학습자라고 하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였어요. 검사해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50여 만원하는 검사비 지원도 없었고요. 검사하고 나서도 병원에서 ‘애가 부족한 걸 채워주세요’라는 식으로 끝이에요. ‘어떻게’ 채우는지 부모가 알 수가 없으니 검사만 받고 마는 경우도 있어요. 부모가 일일이 정보를 찾아야 했어요.
저는 원래 학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어요. 사회 취약 계층 아이들을 복지와 연결하고 아이들 상담도 했죠. 제 아이가 언어치료, 인지치료, 작업치료를 다 받아야 하는데 누가 전담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아이 돌봄에 집중했어요. '나만의 문제가 아닐 텐데, 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로만 치부될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부를 해보니, 느린학습자가 전체 인구의 13.59%라고 합니다. 한 반에 3~4명이잖아요.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 경계선지능인 리빙랩 활동을 진행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조기 개입이 정말 중요하고 부모나 학교에서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1년 12월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 진행하는 비영리스타트업 공모사업에 응모했습니다.
-2022년부터 본격적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그간 여러 가지 일을 하셨어요.
=처음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학교에 이런 아이들이 많은데 학교에서 케어를 못 하잖아요. 그렇다고 모두 치료실에 다닐 수도 없고요. 그럼 이 아이들은 다 어디가 있지? 그게 궁금했어요. 저는 서울 부모커뮤니티에 참여해 정보를 많이 얻었는데 강원도에는 ’느린학습자‘ 부모 모임이 없었어요. 그것부터 만들었죠. 정보 공유하고 아이들 같이 놀게 해주자는 취지였어요. 부모도 양육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었고요. 그때는 좀 화가 났었던 거 같아요. 교육청도 복지관도 왜 다 나 몰라라 하지?
점점 부족한 게 보였어요. 청년들한테 상담 전화가 엄청나게 오는 거예요. 느린학습자 ‘성인’들을 만나보니 상황이 더 취약했어요. 죽음의 문턱에 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청년 지원사업, 자립 훈련도 하게 됐고요. 그런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더 어릴 때부터 기초학력뿐만 아니라 관계형성 능력, 사회성을 키우고 자립 교육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했죠. 학교 안으로 들어가 프로그램에 하면서 교사 교육도 하고 교육간담회도 열며 확장하게 됐어요. 활동하다 보이는 것들이 사업이 되는 것 같아요. 해야 할 사업이 많아요. (느린학습자)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자살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반 청소년에 비해 지지 체계가 너무 없거든요.
-‘느린학습자’ 청년들의 모임도 만드셨는데요. 청년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은 무엇이고, 자살 시도 방지를 위해 어떤 사업을 벌이실 계획인가요?
=청년들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취업이 이루어져야 하고요.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도 있고요. 매주 집단 활동을 통해 사회성, 관계형성 훈련을 하고 있어요. 정기적으로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이들에겐 전문가 멘토링을 하고요. 현재 ‘느린학습자용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어요. 전문가 자문을 받아 아산나눔재단 지원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학교와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부모 모임부터 꾸려가셨는데 처음엔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셨어요?
=엄청 홍보했어요. 부모들 인터뷰하고 간담회하고 그러면서 한 두 분씩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임에 참여하는 부모가) 200명 정도 돼요. 프로그램에 늘 참여하는 아이들은 약 50명, 청년은 10명 정도 있어요. 스타트업 지원은 후배랑 같이 시작했어요. 지금은 당사자 부모 두 분 등 저를 포함해서 4명이 일하고 있어요. 급여는 공모사업이나 학교 활동 등 수익사업, 후원금으로 나가고 있어요.

느린학습자 아이들과의 커뮤니티 활동 모습 ⓒ느린소리
- ‘느린소리’는 복지기관이나 교육기관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 제가 복지기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저희 아이가) "복지 대상자가 아닙니다"였어요. 장애인복지관에 가면 '장애인이 아니니까 안 된다', 종합복지관에서는 '이 아이들의 기준을 뭘로 잡느냐'고 하죠. 경계선은 법적으로 규정된 것도 아니고, 소득 수준으로 나누는 것도 아니거든요. 학교에서는 '특수교육 대상자가 아니니까 일반 학급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요. 행정기관, 복지기관, 교육기관 모두 제일 먼저 “(느린학습자가) 몇 명이에요? 몇 명인줄 알고 도와줘요?”라고 물었어요. 행정이나 교육기관에서 조사를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희는 '경계선지능인'보다는 폭넓게 '느린학습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어요. 경계선지능은 지능지수 71~84로만 판단하지만, 지능지수가 86이라도 인지·학습·사회성이 떨어지면 느린학습자이거든요. 초기 상담이 굉장히 중요해요. 복지관은 업무도 대상자도 많으니까 세밀하게 못 들어가요. 저희는 한 사람당 한 시간은 잡아 검사하고 아이에게 부족한 게 뭔지, 어떤 지원을 할 수 있는지 살펴요. 또 유아기부터 청년기까지 전 생애를 지원해요. 가족까지 함께요.
-느린학습자들의 특성은 무엇인가요?
=스펙트럼이 넓어 딱 잘라 분류하기는 어려워요. 어떤 친구는 암기나 문제 풀이를 잘하지만 말을 거의 못 해요. 반대로 말을 아주 잘하는데 기억력이 떨어져 학습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요. 또 어떤 친구는 사회성이 많이 떨어져요. 친구가 이야기할 때 이해를 못해요. 감정 이해력이 떨어져서 자기가 기분이 나쁜 게 슬퍼서인지 화나서인지 잘 구별하지 못하고 짜증을 내기도 해요. 그러니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있어요.
한 명 한 명 맞춤으로 접근해야 해서 학교 프로그램은 대상을 4명 이하로 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흥분을 잘하면, 어떤 상황에서 흥분하는지 빨리 파악하고 아이가 울거나 물건을 던지기 전에 개입해야 해요. 경험이 필요하죠. 만약, 참여 아이들이 10명이면 보조교사가 2명, 주 강사 1명, 기록만하는 관찰자가 같이 해요. 경제적 관점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어쩔 수 없어요.

학교-교사-부모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온전한 돌봄이 가능하다.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 모습 ⓒ느린소리
-학교에 들어가는 과정은 어땠나요?
=지금은 6개 학교에 들어가고 있어요. 작년부터 제가 맡아 하고 있는데 좀 벅차요. 가장 큰 고민은 강사 양성이에요. 학교에서 아이들만 만나는 게 아니라 교사와 부모님에게도 피드백 드려요. 아이를 도우려면 학교, 교사, 부모가 함께 해야 하거든요. 학교장이 관심 없으면 이런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하기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학교별로 제안서와 공문을 보냈죠.
-학교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변화를 느끼신 적이 있나요?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일대일 활동보다는 그룹 활동으로 타인과의 관계형성 훈련을 해요. 중학생 경우에는 사춘기의 아이들의 특성과 정서적 취약성을 고려해 일대일로 진행해요. 이야기 나눔, 이야기 전달,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죠. 한 예로 사회적 상황에 대해 이해력이 떨어지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했던 초등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1년정도 만난 후에 처음으로 “미안해, 사과할게”라는 말을 했어요. 자신을 탐색하고 돌아보는 힘이 생겨난 거죠.

법 사각 지대인 경계성지능인 지원을 위한 인권 보호 활동 ⓒ느린소리
- 경계성지능인 지원 조례 제정과 법안 발의 활동까지 하셨는데요.
=시청에 가서 "이런 게 필요하다"고 하면 "조례가 없다, 어느 부처 소관인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와요. 그래서 "그럼 조례를 만들자" 생각했죠.
춘천시 (경계성지능인 지원) 조례는 처음에 부결됐어요. 다수당에서 원하는 내용을 반영해 다시 올려 통과됐죠. 평생교육이나 복지 쪽이나 소관을 안 하겠다고 해서 보육아동과에서 맡았어요. 그러면 사업 대상이 아동으로 국한돼 저는 반대했는데 대안이 없었어요. 강원도 조례는 비교적 빨리 통과됐어요. 조례가 생기니 실태조사를 하고 사업도 진행할 수 있게 됐죠. 저희가 춘천시 사업을 받지는 않았어요. 대상이 아동에 국한되고 몇 명 등 수치 위주 평가여서 저희 취지와는 맞지 않았어요. 또 춘천시 사업을 받으면 대상을 춘천 시민으로 잡아야 하는데 저희 센터엔 인근 군 단위에서 많이 오시거든요. 군 단위엔 진짜 인프라가 없어요. 아이들이 갈 데가 없죠.
저희가 법 제정을 처음 시도한 단체예요. '경계선지능 지원법 제정 추진 연대'를 전국 단위로 조직해, 국회 토론회와 간담회를 열었어요. 느린학습자’는 법적 사각 지대에 놓여있어요. 남자 아이들은 군대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돌아와 일상 생활을 못 하기도 해요. 학교 폭력의 경우, 장애 아이를 대상으로 하면 가중 처벌 되는데 느린학습자는 아니에요. 오히려 느린학습자가 가해자로 지목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 아이들 이용해서 돈을 갈취하거나 때리게 시킨다거나 해서 이 아이들이 가해자가 돼 버리기도 해요. 여자 아이들은 성적으로 착취당하기 쉽고요.
제대로 된 정책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느린학습자’를 단순히 현금 지원받는 수혜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들이 취업, 학업을 이어가 자립할 수 있도록이요. 또 행정에서 장애인 쪽과 ‘느린학습자’ 사이 갈등을 조장할까 봐 걱정이에요. 발달장애인 예산 빼서 경계성지능 쪽으로 준다고 하면 갈등이 불거지잖아요. 실제로 장애인 부모님들 만나면 그런 의도가 없는데도 행정에서는 “너네 지원하면 장애인 쪽에서 반대한다”고 이야기해요. 돈을 쥔 쪽이 ‘너희끼리 싸워’ 이런 느낌이죠.
-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하셨는데 힘들진 않으신가요?
= 네트워크가 정말 중요해요. 다양한 기관과 자원이 결합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춘천 13개 기관이 매월 한번씩 같이 회의해요. 복지관,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교육청, 일반 심리 상담기관에서 들어오는데 춘천시에서는 아직 관심 없더라고요. 몸이 힘들지만 저는 자원이 많은 편이에요. 가족들이 지원해 주니 가능한 일이에요. 함께하는 사람이 정말 중요합니다. 조직 내에서 공감이 되지 않으면, "이게 왜 필요하냐"는 말이 나올 수 있거든요. (저랑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신 분들께)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건 오래 가야 하는 일이니까요.
- 앞으로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 학교랑 센터에서 지원하면 부모가 손을 놓는 경우가 있어요. 느린소리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에요. 아이를 가장 먼저 돌봐야 하는 건 가정이거든요. 자기 아이가 어떤지, 뭘 잘하는지 부모가 잘 알아야 해요. 그래서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에요.
‘느린소리’가 없어도 되는 사회가 제 꿈이에요. 지역, 학교, 가정 안에서 아이에게 맞는 지원이 이뤄지면 느린소리가 필요 없죠. 학교, 복지관, 지역아동센터도 있잖아요. 이런 곳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는 친구들을 폭넓게 지원하면 좋겠어요.
인터뷰 및 정리: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안영삼, 시민연결팀 김소민

『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이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느린학습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조례제정까지 ‘빠른 걸음’
느린소리 최수진 대표 @춘천
느린학습자를 아시나요? 지능지수 71~84로 판단하는 경계선지능보다 폭넓은 의미랍니다. 강원도 춘천에서 경계선지능인과 느린학습자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느린소리’의 최수진 대표가 공부해 보니, 전체 인구의 13.59%를 차지했습니다. 한 반에 3~4명 꼴인 셈이죠. 최 대표는 ‘느린학습자’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인지, 언어, 작업 치료까지 발 동동 구르며 감당했답니다. 춘천에 부모 모임도 없어 관련 정보도 구하기 힘들었다는군요. ‘이게 나만의 문제일까?’ 이렇게 2022년 시작한 사단법인 ‘느린소리’는 네트워크 구축, 학교 프로그램 개발부터 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 제정까지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느린소리가 입주해 있는 커먼즈필드 춘천에서 최수진 대표를 만났습니다.
커먼즈필드 춘천 비즈니스 오피스에서 만난 느린소리 최수진 대표 ⓒ희망제작소
-‘느린소리’를 소개해주신다면.
=강원도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인근 군 단위에서도 저희 센터를 방문하고, 학교나 교사 교육은 전국 어디든 요청이 있으면 갑니다. 저희는 느린학습자를 위한 생애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어요. 유아기부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거든요. 무엇보다 저희가 가치를 두는 건 느린학습자의 자립입니다. 느린학습자 청년 당사자들을 만나보면 자립에 대한 욕구가 커요. 부모님들은 '내가 하루라도 더 살고 죽겠다'라는 말씀을 하시고요. 그래서 유아기 활동부터 모든 활동이 자립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느린학습자를 키우는 엄마예요. 2021년 즈음, 수도권과 달리 강원도에선 느린학습자란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병원에서도 생소해했고요. 학교, 복지기관 문을 두드렸는데 모르더라고요. 교육청에서는 '느린학습자가 뭐예요?'라고 저한테 물었어요. 느린학습자라고 하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였어요. 검사해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50여 만원하는 검사비 지원도 없었고요. 검사하고 나서도 병원에서 ‘애가 부족한 걸 채워주세요’라는 식으로 끝이에요. ‘어떻게’ 채우는지 부모가 알 수가 없으니 검사만 받고 마는 경우도 있어요. 부모가 일일이 정보를 찾아야 했어요.
저는 원래 학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어요. 사회 취약 계층 아이들을 복지와 연결하고 아이들 상담도 했죠. 제 아이가 언어치료, 인지치료, 작업치료를 다 받아야 하는데 누가 전담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아이 돌봄에 집중했어요. '나만의 문제가 아닐 텐데, 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로만 치부될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부를 해보니, 느린학습자가 전체 인구의 13.59%라고 합니다. 한 반에 3~4명이잖아요.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 경계선지능인 리빙랩 활동을 진행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조기 개입이 정말 중요하고 부모나 학교에서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1년 12월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 진행하는 비영리스타트업 공모사업에 응모했습니다.
-2022년부터 본격적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그간 여러 가지 일을 하셨어요.
=처음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학교에 이런 아이들이 많은데 학교에서 케어를 못 하잖아요. 그렇다고 모두 치료실에 다닐 수도 없고요. 그럼 이 아이들은 다 어디가 있지? 그게 궁금했어요. 저는 서울 부모커뮤니티에 참여해 정보를 많이 얻었는데 강원도에는 ’느린학습자‘ 부모 모임이 없었어요. 그것부터 만들었죠. 정보 공유하고 아이들 같이 놀게 해주자는 취지였어요. 부모도 양육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었고요. 그때는 좀 화가 났었던 거 같아요. 교육청도 복지관도 왜 다 나 몰라라 하지?
점점 부족한 게 보였어요. 청년들한테 상담 전화가 엄청나게 오는 거예요. 느린학습자 ‘성인’들을 만나보니 상황이 더 취약했어요. 죽음의 문턱에 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청년 지원사업, 자립 훈련도 하게 됐고요. 그런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더 어릴 때부터 기초학력뿐만 아니라 관계형성 능력, 사회성을 키우고 자립 교육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했죠. 학교 안으로 들어가 프로그램에 하면서 교사 교육도 하고 교육간담회도 열며 확장하게 됐어요. 활동하다 보이는 것들이 사업이 되는 것 같아요. 해야 할 사업이 많아요. (느린학습자)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자살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반 청소년에 비해 지지 체계가 너무 없거든요.
-‘느린학습자’ 청년들의 모임도 만드셨는데요. 청년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은 무엇이고, 자살 시도 방지를 위해 어떤 사업을 벌이실 계획인가요?
=청년들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취업이 이루어져야 하고요.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도 있고요. 매주 집단 활동을 통해 사회성, 관계형성 훈련을 하고 있어요. 정기적으로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이들에겐 전문가 멘토링을 하고요. 현재 ‘느린학습자용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어요. 전문가 자문을 받아 아산나눔재단 지원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학교와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부모 모임부터 꾸려가셨는데 처음엔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셨어요?
=엄청 홍보했어요. 부모들 인터뷰하고 간담회하고 그러면서 한 두 분씩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임에 참여하는 부모가) 200명 정도 돼요. 프로그램에 늘 참여하는 아이들은 약 50명, 청년은 10명 정도 있어요. 스타트업 지원은 후배랑 같이 시작했어요. 지금은 당사자 부모 두 분 등 저를 포함해서 4명이 일하고 있어요. 급여는 공모사업이나 학교 활동 등 수익사업, 후원금으로 나가고 있어요.
느린학습자 아이들과의 커뮤니티 활동 모습 ⓒ느린소리
- ‘느린소리’는 복지기관이나 교육기관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 제가 복지기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저희 아이가) "복지 대상자가 아닙니다"였어요. 장애인복지관에 가면 '장애인이 아니니까 안 된다', 종합복지관에서는 '이 아이들의 기준을 뭘로 잡느냐'고 하죠. 경계선은 법적으로 규정된 것도 아니고, 소득 수준으로 나누는 것도 아니거든요. 학교에서는 '특수교육 대상자가 아니니까 일반 학급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요. 행정기관, 복지기관, 교육기관 모두 제일 먼저 “(느린학습자가) 몇 명이에요? 몇 명인줄 알고 도와줘요?”라고 물었어요. 행정이나 교육기관에서 조사를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희는 '경계선지능인'보다는 폭넓게 '느린학습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어요. 경계선지능은 지능지수 71~84로만 판단하지만, 지능지수가 86이라도 인지·학습·사회성이 떨어지면 느린학습자이거든요. 초기 상담이 굉장히 중요해요. 복지관은 업무도 대상자도 많으니까 세밀하게 못 들어가요. 저희는 한 사람당 한 시간은 잡아 검사하고 아이에게 부족한 게 뭔지, 어떤 지원을 할 수 있는지 살펴요. 또 유아기부터 청년기까지 전 생애를 지원해요. 가족까지 함께요.
-느린학습자들의 특성은 무엇인가요?
=스펙트럼이 넓어 딱 잘라 분류하기는 어려워요. 어떤 친구는 암기나 문제 풀이를 잘하지만 말을 거의 못 해요. 반대로 말을 아주 잘하는데 기억력이 떨어져 학습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요. 또 어떤 친구는 사회성이 많이 떨어져요. 친구가 이야기할 때 이해를 못해요. 감정 이해력이 떨어져서 자기가 기분이 나쁜 게 슬퍼서인지 화나서인지 잘 구별하지 못하고 짜증을 내기도 해요. 그러니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있어요.
한 명 한 명 맞춤으로 접근해야 해서 학교 프로그램은 대상을 4명 이하로 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흥분을 잘하면, 어떤 상황에서 흥분하는지 빨리 파악하고 아이가 울거나 물건을 던지기 전에 개입해야 해요. 경험이 필요하죠. 만약, 참여 아이들이 10명이면 보조교사가 2명, 주 강사 1명, 기록만하는 관찰자가 같이 해요. 경제적 관점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어쩔 수 없어요.
학교-교사-부모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온전한 돌봄이 가능하다.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 모습 ⓒ느린소리
-학교에 들어가는 과정은 어땠나요?
=지금은 6개 학교에 들어가고 있어요. 작년부터 제가 맡아 하고 있는데 좀 벅차요. 가장 큰 고민은 강사 양성이에요. 학교에서 아이들만 만나는 게 아니라 교사와 부모님에게도 피드백 드려요. 아이를 도우려면 학교, 교사, 부모가 함께 해야 하거든요. 학교장이 관심 없으면 이런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하기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학교별로 제안서와 공문을 보냈죠.
-학교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변화를 느끼신 적이 있나요?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일대일 활동보다는 그룹 활동으로 타인과의 관계형성 훈련을 해요. 중학생 경우에는 사춘기의 아이들의 특성과 정서적 취약성을 고려해 일대일로 진행해요. 이야기 나눔, 이야기 전달,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죠. 한 예로 사회적 상황에 대해 이해력이 떨어지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했던 초등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1년정도 만난 후에 처음으로 “미안해, 사과할게”라는 말을 했어요. 자신을 탐색하고 돌아보는 힘이 생겨난 거죠.
법 사각 지대인 경계성지능인 지원을 위한 인권 보호 활동 ⓒ느린소리
- 경계성지능인 지원 조례 제정과 법안 발의 활동까지 하셨는데요.
=시청에 가서 "이런 게 필요하다"고 하면 "조례가 없다, 어느 부처 소관인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와요. 그래서 "그럼 조례를 만들자" 생각했죠.
춘천시 (경계성지능인 지원) 조례는 처음에 부결됐어요. 다수당에서 원하는 내용을 반영해 다시 올려 통과됐죠. 평생교육이나 복지 쪽이나 소관을 안 하겠다고 해서 보육아동과에서 맡았어요. 그러면 사업 대상이 아동으로 국한돼 저는 반대했는데 대안이 없었어요. 강원도 조례는 비교적 빨리 통과됐어요. 조례가 생기니 실태조사를 하고 사업도 진행할 수 있게 됐죠. 저희가 춘천시 사업을 받지는 않았어요. 대상이 아동에 국한되고 몇 명 등 수치 위주 평가여서 저희 취지와는 맞지 않았어요. 또 춘천시 사업을 받으면 대상을 춘천 시민으로 잡아야 하는데 저희 센터엔 인근 군 단위에서 많이 오시거든요. 군 단위엔 진짜 인프라가 없어요. 아이들이 갈 데가 없죠.
저희가 법 제정을 처음 시도한 단체예요. '경계선지능 지원법 제정 추진 연대'를 전국 단위로 조직해, 국회 토론회와 간담회를 열었어요. 느린학습자’는 법적 사각 지대에 놓여있어요. 남자 아이들은 군대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돌아와 일상 생활을 못 하기도 해요. 학교 폭력의 경우, 장애 아이를 대상으로 하면 가중 처벌 되는데 느린학습자는 아니에요. 오히려 느린학습자가 가해자로 지목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 아이들 이용해서 돈을 갈취하거나 때리게 시킨다거나 해서 이 아이들이 가해자가 돼 버리기도 해요. 여자 아이들은 성적으로 착취당하기 쉽고요.
제대로 된 정책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느린학습자’를 단순히 현금 지원받는 수혜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들이 취업, 학업을 이어가 자립할 수 있도록이요. 또 행정에서 장애인 쪽과 ‘느린학습자’ 사이 갈등을 조장할까 봐 걱정이에요. 발달장애인 예산 빼서 경계성지능 쪽으로 준다고 하면 갈등이 불거지잖아요. 실제로 장애인 부모님들 만나면 그런 의도가 없는데도 행정에서는 “너네 지원하면 장애인 쪽에서 반대한다”고 이야기해요. 돈을 쥔 쪽이 ‘너희끼리 싸워’ 이런 느낌이죠.
-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하셨는데 힘들진 않으신가요?
= 네트워크가 정말 중요해요. 다양한 기관과 자원이 결합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춘천 13개 기관이 매월 한번씩 같이 회의해요. 복지관,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교육청, 일반 심리 상담기관에서 들어오는데 춘천시에서는 아직 관심 없더라고요. 몸이 힘들지만 저는 자원이 많은 편이에요. 가족들이 지원해 주니 가능한 일이에요. 함께하는 사람이 정말 중요합니다. 조직 내에서 공감이 되지 않으면, "이게 왜 필요하냐"는 말이 나올 수 있거든요. (저랑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신 분들께)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건 오래 가야 하는 일이니까요.
- 앞으로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 학교랑 센터에서 지원하면 부모가 손을 놓는 경우가 있어요. 느린소리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에요. 아이를 가장 먼저 돌봐야 하는 건 가정이거든요. 자기 아이가 어떤지, 뭘 잘하는지 부모가 잘 알아야 해요. 그래서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에요.
‘느린소리’가 없어도 되는 사회가 제 꿈이에요. 지역, 학교, 가정 안에서 아이에게 맞는 지원이 이뤄지면 느린소리가 필요 없죠. 학교, 복지관, 지역아동센터도 있잖아요. 이런 곳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는 친구들을 폭넓게 지원하면 좋겠어요.
인터뷰 및 정리: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안영삼, 시민연결팀 김소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