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뜨래페이로 시작하는 지역순환경제의 가능성
- ‘부여형 지역순환경제 기본구상 연구’ 중심으로
충청남도 부여군이 조용한 실험을 하고 있다. 2019년 전국 최초로 공동체 순환형 지역화폐 '굿뜨래페이'를 만든 이 인구 5만 8천 명의 지자체는 이제 그 경험을 발판 삼아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다시 지역 안에서 돌아오는 구조, 지역순환경제의 설계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중 위기: 인구는 줄고, 돈은 새나간다
지역에서 여러 문제가 겹쳐 있다. 부여군 인구는 2021년 6만 3,774명에서 2025년 5만 8,377명으로 5년 사이 8% 넘게 감소했다. 아동·청소년·청년 인구는 같은 기간 21~23%씩 급감했고, 인구소멸지수는 0.174에서 0.125로 떨어지며 '소멸 고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경제 지표는 더 냉혹하다. 2024년 부여군의 1인당 GRDP는 약 3,234만 원으로, 충청남도 평균(약 6,447만 원)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충남 내 모든 시·군 중 최하위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부여에서 생산된 돈이 지역 밖으로 계속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충청남도는 지역내총생산 대비 지역총소득 기준 순유출 규모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두 번째로 크다.
정부는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해 고향사랑기부제·지방소멸대응기금·투자유치 등 외부 자원을 끌어오는 전략을 써왔다. 그러나 그 전략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외부 자본과 인구의 유입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지역이 스스로 살아남는 힘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내놓는 대안이 '지역순환경제'다.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다시 지역 안에서 소비·공유·재투자되도록 제도와 구조를 설계하는 전략이다.
굿뜨래페이: 이미 작동 중인 순환의 증거
그렇다면 그 출발점은 어디인가. 이미 부여군은 지역순환경제를 작동시킬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 굿뜨래페이 연간 결제액은 2023년 962억 원에서 2025년 1,249억 원으로 29.8% 증가했다. 업종별로 보면 단순한 숫자 이상이 보인다. 음식·식품(307억, 49% 증가), 전통시장(59억, 66% 증가), 차량정비(55억, 73% 증가).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소비가 지역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에 남아 있다.
공간적으로도 포용적이다. 부여군 내 어느 읍·면도 결제가 줄지 않았다. 소멸 위기가 가장 심한 내산면(31.9%), 임천면(31.4%), 양화면(29.0%)에서도 30% 안팎의 성장률이 나타났다. 60대·70대의 결제가 전체의 54.5%를 차지하면서, 연금 등 이전소득이 지역 소상공인 매출로 연결되는 '복지-경제 순환 고리'도 확인된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공공조달에서 사회연대경제 조직의 비중은 금액 기준 1% 수준에 불과하다. 관내 업체 우선 원칙이 있지만 강행규정이 아니어서 담당자 재량에 의존한다. 지역화폐·공공조달·로컬푸드·사회연대경제, 4대 인프라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파편화되어 있다. 보고서는 이것이 부여군 지역순환경제의 현재 한계라고 진단할 수 있다.

다음 그림은 2026년 연구한 '부여형 지역순환경제 기본구상 연구'에서 희망제작소가 부여군에 제안한 자생적 선순환 모델로서 지금까지 진행된 정책과는 무관합니다.
부여형 모델의 핵심 제안…지역 내 인프라 연결
부여형 모델이 제안하는 전략의 핵심은 하나다. 파편화된 4대 인프라를 연결하여, 지역 자원이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주요 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굿뜨래페이를 재투자 기금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낙전 수익(소진 안 된 포인트)과 이자를 '순환경제 재투자 기금'으로 전환하고, 매출 하위 30% 가맹점 지원에 우선 투입한다. 지역화폐가 단순 소비 도구를 넘어 지역 재투자의 금융 기반이 된다.
두 번째는 공공조달을 '로컬 우선구매 플랫폼'으로 하는 것이다. 지역 기업 기여도를 평가 지표(10~20%)에 반영하고, 담당 공무원 면책 근거를 조례로 마련한다. 관행이 아닌 제도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앵커기업 없는 지역은 '상권협동조합'을 앵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개별 점포를 협동조합으로 묶으면 합산 매출 수십억 원, 고용 수백 명 규모의 사실상 앵커기관이 탄생한다. 공동 구매·공동 마케팅으로 자본의 역외 유출을 막는다.
네 번째는 농어촌기본소득과 굿뜨래페이를 결합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지역화폐로 지급되면 지역 내 소비 순환이 극대화된다. 블록체인 기반 굿뜨래페이 인프라를 보유한 부여군은 다른 지자체에 비해 결정적 준비 우위에 있다.
마지막으로 신재생에너지 이익의 주민 환원을 통하여 태양광·바이오가스 개발 이익의 일부를 '부여형 기본생활 안정기금'으로 공유화한다. 에너지 전환이 주민 소득 보장의 재원이 되는 구조다.
외부 의존에서 내생적 자립으로
부여군의 사례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자체 한 곳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국 수백 개 농촌 지자체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인구는 줄고, 돈은 새나가고, 외부 자원에 의존할수록 자립 역량은 더 약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영국 프레스턴은 파산 직전에서 지역 공공조달 개혁만으로 극적으로 반전했다. 총 조달액 중 지역 기업 지출이 5%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진보적 조달' 정책을 도입하여, 도시 전체의 경제 흐름을 바꿨다. 신안군은 에너지 개발 이익을 지역화폐로 주민에게 돌려줌으로써 인구 감소를 인구 증가로 바꿨다. 부여는 이미 이 방향에서 가장 앞선 자치단체 중 하나다. 2026년 2월 지방시대위원회의 지역순환경제 포럼에서 전국 대표 사례로 발표됐고, 행정안전부 선정 기본사회 우수사례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파편화된 인프라의 부분적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4대 인프라가 하나의 순환 구조로 연결되는 순간, 부여형 지역순환경제는 비로소 진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돈이 지역 안에서 돌게 하는 것. 쉽게 들리지만, 이를 제도와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그리고 그 실험의 성패는 소멸 위기에 처한 한국 농촌 전체에 하나의 길을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글: 김세진 지역혁신팀 부연구위원 inosj@makehope.org
굿뜨래페이로 시작하는 지역순환경제의 가능성
- ‘부여형 지역순환경제 기본구상 연구’ 중심으로
충청남도 부여군이 조용한 실험을 하고 있다. 2019년 전국 최초로 공동체 순환형 지역화폐 '굿뜨래페이'를 만든 이 인구 5만 8천 명의 지자체는 이제 그 경험을 발판 삼아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다시 지역 안에서 돌아오는 구조, 지역순환경제의 설계도를 만드는 것이다.
지역에서 여러 문제가 겹쳐 있다. 부여군 인구는 2021년 6만 3,774명에서 2025년 5만 8,377명으로 5년 사이 8% 넘게 감소했다. 아동·청소년·청년 인구는 같은 기간 21~23%씩 급감했고, 인구소멸지수는 0.174에서 0.125로 떨어지며 '소멸 고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경제 지표는 더 냉혹하다. 2024년 부여군의 1인당 GRDP는 약 3,234만 원으로, 충청남도 평균(약 6,447만 원)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충남 내 모든 시·군 중 최하위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부여에서 생산된 돈이 지역 밖으로 계속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충청남도는 지역내총생산 대비 지역총소득 기준 순유출 규모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두 번째로 크다.
정부는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해 고향사랑기부제·지방소멸대응기금·투자유치 등 외부 자원을 끌어오는 전략을 써왔다. 그러나 그 전략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외부 자본과 인구의 유입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지역이 스스로 살아남는 힘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내놓는 대안이 '지역순환경제'다.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다시 지역 안에서 소비·공유·재투자되도록 제도와 구조를 설계하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그 출발점은 어디인가. 이미 부여군은 지역순환경제를 작동시킬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 굿뜨래페이 연간 결제액은 2023년 962억 원에서 2025년 1,249억 원으로 29.8% 증가했다. 업종별로 보면 단순한 숫자 이상이 보인다. 음식·식품(307억, 49% 증가), 전통시장(59억, 66% 증가), 차량정비(55억, 73% 증가).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소비가 지역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에 남아 있다.
공간적으로도 포용적이다. 부여군 내 어느 읍·면도 결제가 줄지 않았다. 소멸 위기가 가장 심한 내산면(31.9%), 임천면(31.4%), 양화면(29.0%)에서도 30% 안팎의 성장률이 나타났다. 60대·70대의 결제가 전체의 54.5%를 차지하면서, 연금 등 이전소득이 지역 소상공인 매출로 연결되는 '복지-경제 순환 고리'도 확인된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공공조달에서 사회연대경제 조직의 비중은 금액 기준 1% 수준에 불과하다. 관내 업체 우선 원칙이 있지만 강행규정이 아니어서 담당자 재량에 의존한다. 지역화폐·공공조달·로컬푸드·사회연대경제, 4대 인프라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파편화되어 있다. 보고서는 이것이 부여군 지역순환경제의 현재 한계라고 진단할 수 있다.
다음 그림은 2026년 연구한 '부여형 지역순환경제 기본구상 연구'에서 희망제작소가 부여군에 제안한 자생적 선순환 모델로서 지금까지 진행된 정책과는 무관합니다.
부여형 모델이 제안하는 전략의 핵심은 하나다. 파편화된 4대 인프라를 연결하여, 지역 자원이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주요 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굿뜨래페이를 재투자 기금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낙전 수익(소진 안 된 포인트)과 이자를 '순환경제 재투자 기금'으로 전환하고, 매출 하위 30% 가맹점 지원에 우선 투입한다. 지역화폐가 단순 소비 도구를 넘어 지역 재투자의 금융 기반이 된다.
두 번째는 공공조달을 '로컬 우선구매 플랫폼'으로 하는 것이다. 지역 기업 기여도를 평가 지표(10~20%)에 반영하고, 담당 공무원 면책 근거를 조례로 마련한다. 관행이 아닌 제도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앵커기업 없는 지역은 '상권협동조합'을 앵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개별 점포를 협동조합으로 묶으면 합산 매출 수십억 원, 고용 수백 명 규모의 사실상 앵커기관이 탄생한다. 공동 구매·공동 마케팅으로 자본의 역외 유출을 막는다.
네 번째는 농어촌기본소득과 굿뜨래페이를 결합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지역화폐로 지급되면 지역 내 소비 순환이 극대화된다. 블록체인 기반 굿뜨래페이 인프라를 보유한 부여군은 다른 지자체에 비해 결정적 준비 우위에 있다.
마지막으로 신재생에너지 이익의 주민 환원을 통하여 태양광·바이오가스 개발 이익의 일부를 '부여형 기본생활 안정기금'으로 공유화한다. 에너지 전환이 주민 소득 보장의 재원이 되는 구조다.
부여군의 사례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자체 한 곳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국 수백 개 농촌 지자체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인구는 줄고, 돈은 새나가고, 외부 자원에 의존할수록 자립 역량은 더 약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영국 프레스턴은 파산 직전에서 지역 공공조달 개혁만으로 극적으로 반전했다. 총 조달액 중 지역 기업 지출이 5%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진보적 조달' 정책을 도입하여, 도시 전체의 경제 흐름을 바꿨다. 신안군은 에너지 개발 이익을 지역화폐로 주민에게 돌려줌으로써 인구 감소를 인구 증가로 바꿨다. 부여는 이미 이 방향에서 가장 앞선 자치단체 중 하나다. 2026년 2월 지방시대위원회의 지역순환경제 포럼에서 전국 대표 사례로 발표됐고, 행정안전부 선정 기본사회 우수사례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파편화된 인프라의 부분적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4대 인프라가 하나의 순환 구조로 연결되는 순간, 부여형 지역순환경제는 비로소 진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돈이 지역 안에서 돌게 하는 것. 쉽게 들리지만, 이를 제도와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그리고 그 실험의 성패는 소멸 위기에 처한 한국 농촌 전체에 하나의 길을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글: 김세진 지역혁신팀 부연구위원 inosj@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