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칼럼] 경제를 지역으로 되돌리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2026-06-15
경제를 지역으로 되돌리다
- 지역순환경제에서 찾는 균형발전의 해법 


 

우리나라 비수도권 지역경제의 위기는 단순한 침체를 넘어, 구조적 피폐화 단계에 진입했다. 고부가가치 산업의 작동 메커니즘이 부재한 비수도권은 청년과 인재를 수도권에 지속적으로 빼앗기고 있으며, 이는 지역 내 생산·소비 감소 및 내수 기반의 붕괴로 직결된다. 


이러한 위기는 특정 구산업에 의존하여 혁신 동력을 상실한 산업 기반의 편중성과 지역의 예금을 모아 서울의 자금 수요만 충족시키는 파행적 금융 유출 구조에서 기인한다. 공공기관 이전 위주의 혁신도시 정책마저 완결적 생태계 구축에 실패하면서, 자본과 의사결정권은 서울이 독점하고 비수도권은 생산만 담당한 채 소득을 수탈당하는 '서울 식민지화'가 심화되고 있다.


지역경제의 피폐화와 파행적인 '서울 식민지화' 현상

 

우리 사회의 지리적 불평등은 과거 국가 주도의 이분법적 공간 분업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 금융 자유화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업 본사와 자본이 서울로 쏠리면서 구조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핵심 신(新)산업마저 수도권에 독점되면서 그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이 고착화되었다. 대도시 집적 효과라는 자본주의적 필연성도 작용했으나 근본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규제 환경과 하드웨어 인프라에만 치중한 낡은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라는 명백한 정책 실패가 지금의 서울 일극 체제를 낳은 핵심 원인이다.

 

비판적 사회과학은 지역 격차가 단순한 오류가 아닌 자본주의 축적 메커니즘의 필연적 산물이라 진단한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자본이 축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윤이 높은 중심부로 이동하며, '수탈에 의한 축적'을 통해 주변부의 잉여를 일방적으로 착취한다고 분석한다. 


도린 매시(Doreen Massey)는 '권력 기하학' 개념을 통해 공간의 격차가 곧 지리적 권력관계의 불평등임을 지적한다. 즉, 서울은 금융과 본사 기능을 집적하여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는 반면, 비수도권은 노동만 제공하며 그 거대한 흐름에 철저히 '종속'된다는 것이다. 결국 지방에서 발생한 잉여가치가 서울의 지주회사와 금융망을 통해 끊임없이 흡수되는 현실은 철저히 위계화된 착취적 권력 구조 그 자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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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pixabay



자본의 공간 전략에 대항하는 대안으로서의 '지역순환경제’

 

이러한 자본의 위계적 공간 구조에 맞서는 실천적 대항 권력이 바로 '지역순환경제'다. 이는 비수도권을 실행 기능에만 묶어두는 불평등한 공간적 분업을 완전히 해체하고, 서울이 독점하던 본사의 '구상' 및 '통제' 권력을 지역 내부로 분산시켜 지리적 위계를 무너뜨리는 급진적 시도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자본의 심각한 역외 유출을 차단하는 강력한 ‘5중 방어선’이 현장에 구축되어야 한다. 


첫째, 지역공공은행 설립 및 지역재투자 제도. 지역 예금과 지역 기업의 수익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둘째, 지역본사제 혹은 복수본사제 도입. 기업의 핵심 의사 결정권과 구상 기능을 지역에 분산해 법인세와 이윤이 지역에 온전히 남도록 유도한다. 


셋째, 지역공동체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부동산 및 토지 지대가 투기 목적으로 외부 유출되는 것을 막고, 이를 지역 사회의 든든한 공유부로 축적한다. 


넷째, ‘지역 공동체 부 구축하기(Community Wealth Building. 지자체나 대학, 병원 등 지역 내 앵커 기관의 막대한 조달 자금이 외부 거대 자본으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 내 협동조합이나 중소기업으로 순환하도록 통제하는 전략이다. 


다섯째, 로컬 디지털 월렛 및 지역화폐 고도화. 주민의 소비가 대형 유통망과 플랫폼을 타고 수도권 본사로 흡수되지 않도록 지역 내 결제망을 촘촘히 엮어낸다. 이렇듯, 지역순환경제는 '경제를 지역으로 되돌리기(Re-Localization)'를 목표로 지역의 흐름을 통제하는 권력이 지역에 내재화될 수 있도록 하는 대항 담론이다.

 

 '권력 기하학' 재편의 관점에서 본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지역순환경제

 

'부울경 메가시티' 같은 초광역권 연합이 진정한 대안이 되려면 단순한 행정이나 대중교통망 통합 같은 하드웨어적 덩치 키우기를 철저히 벗어나야 한다. 수도권과 대등하게 경제를 설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독자적 의사 결정권(금융 컨트롤 타워 등)'을 쟁취하여 중심부의 통제 권력을 권역 내부로 가져와야만 한다. 또한, 권역 내 특정 거점 도시로만 자원이 쏠려 주변부 소도시와 농어촌이 배제되는 '지역 내부의 식민지화' 현상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도시가 고유한 특화 기능을 분담해 상호 의존하는 '수평적 혁신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지역순환경제의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의의는, 그간 중앙의 거대 자본에 일방적으로 빼앗기고 종속되어 있던 지역 내 자원과 자본의 흐름을 통제할 실질적인 '대항 권력'을 지역 스스로 되찾는 데 있다.


글: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한국지역순환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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