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완벽한 기획안은 사절합니다” -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 스테이지3 중간공유회

2026-02-24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는 누군가의 강의를 받아 적는 교육이 아니라, 각자의 질문을 꺼내 쓰고 서로의 삶을 경청하며 함께 길을 찾는 프로그램입니다. “삶의 전환기를 기록하고, 지역의 제도·자원·관계망과 연결해보는 포트폴리오 실험 프로그램”으로 스스로의 전환기를 정의하고, 기록을 사회적 실험(스테이지 1~3)으로 확장합니다. 

  • 스테이지 1:  타임라인, 감정지도, 전환사전 등으로 나의 전환기와 질문을 명료화합니다.
  • 스테이지 2: 도보 15분 생활권 등 지역을 실제로 탐방해보며 지역 자원·제도·공간과 연결합니다.
  • 스테이지 3: 앞선 기록을 토대로 작은 실험을 설계·실행합니다.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 내 삶의 과제가 무엇인지 찾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시작해야할까요?” 

우리는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에 익숙합니다. 현장의 여러 지원·공모 사업도 대체로 이 문장을 따라갑니다. 성과가 증명된 기획서, 실현 가능성이 검증된 인물에게 예산과 자원이 따라가게 됩니다. 이 시스템은 ‘질문의 단계’에 진입한 이들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밀어내곤 합니다.

삶의 전환기는 얼핏 ‘결정’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문’의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졸업, 퇴사, 이주, 돌봄… 누구나 저마다의 전환기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정답 고르기가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마음 속의 ‘단단한 질문 한 줄’을 찾아내는 연습입니다.

그런데 ‘더 빨리, 더 큰 성과’를 요구하는 분위기에서는 이런 고민이 종종 ‘실패’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많은 지원사업이 이미 계획이 정리된 상태를 전제로 설계되다 보니, 질문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줄 수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지원의 문턱은 ‘준비된 해결사’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해지고, 아직 방향을 찾는 중인 시민들의 질문은 쉽게 주변으로 밀려납니다.

희망제작소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를 기획했습니다. 제작소는 시작의 두려움과 막연함을 개인의 무능이 아닌, 우리 사회 구조의 빈틈으로 바라봅니다. 준비된 사람만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저변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는 망설임과 막막함으로 멈춰 선 전환의 시기를 ‘뒤처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해석합니다. 총 세 단계에 맞춰 설계된 워크시트를 작성하며, 내가 겪고 있는 고민과 불편함의 원인을 찾으며 관계와 일상을 돌아보고(스테이지 1), 개인의 질문을 지역의 자원과 연결해보며(스테이지 2), 나만의 ‘일(업)’을 찾아내는 방법을 함께 실험(스테이지 3)합니다. 혼자가 아닌, 나처럼 흔들리고 있는 동료들과 바인더를 작성하며 ‘나답게 사는 법’과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법’을 동시에 연습해봅니다. (소개글: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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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 : 스테이지3 중간공유회에 참석한 참여자들과 안영삼 사회혁신 팀장 ⓒ희망제작소


지난 1월 31일, 희망제작소 3층 헉스페이스에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삶의 질문을 지역과 연결해 ‘나만의 작은 실험’으로 번역해내는 과정, ‘스테이지3’를 지나고 있는 네 명의 예비 소셜디자이너들이 모였습니다.

현장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협력은 무산되기 일쑤고, 참여자가 적어 일정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흔들림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멈춰 선 지점을 동료들과 함께 들여다보며, 실패라는 단어 대신 ‘다음의 선택지’를 함께 찾았습니다.


“못했다, 안 된다고 말하는 대신, ‘되는 길’을 함께 찾는 사람들”


이 날의 기록으로 남겨진 한 문장이 바인더가 지향하는 바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막막함이 질문이 되고, 그 질문이 다시 지역을 바꾸는 작은 실험으로 옮겨지는 생생한 장면들이 가득한 중간공유회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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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 : 스테이지3 중간공유회 현장 ⓒ희망제작소


대전, 고성, 광명에서… ‘나’의 질문이 ‘지역’의 대안이 되는 마법

스테이지3는 본격적인 ‘실행’의 단계입니다. 다만 바인더가 지향하는 실행은 성과를 증명하는 과정은 아닙니다. 스테이지 1·2를 거치며 적어 내려간 질문과 상상을 지역사회라는 캔버스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보고, “이 질문이 지역의 누구에게 어떻게 닿을지”, “어떤 방식이라면 내가 지속 가능하게 이어갈 수 있을지”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중요한 건 프로젝트 규모 확장이나 성과 증명이 아니라, 시작점과 방향입니다. 바인더의 실험은 작지만, 그만큼 구체적으로 지역(동네)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 대전 | ‘지역 맞춤형 커리어 레퍼런스’를 수집 중인 허새나 참가자

허새나 님은 지역 이주 후 겪은 개인적 경험을 공공의 과제로 확장합니다. 지역의 일자리가 다양하지 않아 청년의 경력 단절/후퇴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지는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지역에서 새로운 일과 업을 개척한 이들의 사례를 수집하고 유형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허새나 참가자는 “지역 이주 후 커뮤니티와 연결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밝히며, “소셜디자이너 바인더에 참여하면서 지역과 연결감이 다시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대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커리어의 길을 기록해서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참고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 강원 고성 | 작은 한옥 마을에서 돌봄 생활망 구축을 실험하는 정현주 참가자

정현주 님은 복지 시스템이 닿지 않는 틈새로 향했습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농어촌 지역을 오가다, 지역의 취약한 의료 시설과 고령화로 얇아진 관계망을 발견했는데요. 스테이지3에서는 부모님댁을 중심으로 마을 주민의 생애사를 채집해 비상연락망을 구축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행정과 지역사회의 장벽 탓에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아쉽다”고 밝히는 한편,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신의 빈 자리를 메워줄 현장 활동가 동료를 두 명이나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값진 성과로 공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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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발표 중인 정현주 참가자(좌), 김유미 참가자(우) ⓒ희망제작소


👉 대전 대덕구 | 돌봄 문제를 커뮤니티로 풀어가는 김유미 참가자

김유미 참가자는 대전 대덕구에서 돌봄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주체들의 관계를 엮는 커뮤니티를 운영합니다. ‘복지 사각지대’라는 딱딱한 단어를 ‘관계의 힘’으로 풀어내고 있는데요. ‘가족돌봄중년’ 당사자로서, 제도적 기준에 맞지 않아 고립된 돌봄 가정들의 주체들이 겪는 정서/관계의 공백을 발견했습니다. 돌봄은 “한 명의 개인사”로 해석되기 쉽지만, 김유미 참가자의 실험은 돌봄을 지역과 공동체의 문제로 다시 보게 합니다. 자기 돌봄 활동, 반찬 만들기 활동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돌봄’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있는데요. “프로젝트가 끝나도 계속 이 만남이 유지되면 좋겠다”는 참여자들의 후기를 통해, 활동 지속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 경기 광명 | 사회적 약자의 정서적 회복에 힘쓰는 송미숙 참가자

송미숙 참여자는 광명에서 사회적 약자의 정서적 회복을 위한 ‘예방’ 단계의 활동을 기획합니다. 방향을 잃고 지쳐 나를 설명할 단어조차 잃어버린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도록 ‘인생지도’ 를 만드는 워크숍을 기획하고 있는데요. 기대했던 지역 내 협력이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 흔들림마저 꼼꼼히 기록하며 자기만의 문제정의를 단단하게 다듬고 있습니다. “교육업에 오래 종사해왔지만, 소셜디자이너 바인더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지역에서 사업을 시도를 해보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송미숙 참여자의 모습에서, 실패를 성장의 자산으로 해석하며 정답이 없는 길을 개척해가는 소셜디자이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지도 모릅니다. “아직 업이 될 만큼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 왜 자원을 쓰느냐”, “이렇게 작은 실험만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요. 하지만 우리는 스테이지3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완벽해 보이던 계획도 현장에서는 반드시 흔들립니다. 협력이 어긋나고, 일정이 틀어지고, 예상이 빗나갑니다. 그런데 그런 충돌이 있어야만 책상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지역의 진짜 현실이 발견됩니다. 누가 손을 내미는지, 무엇이 막히는지, 어디에 틈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실패’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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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3 참여자들이 각자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한 과정을 담은 발표자료 ⓒ희망제작소



실패했는데 박수를? 성공을 다시 정의하는 수상한 중간공유회 현장

중간공유회는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점검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해진 성과의 틀을 깨고 ‘성공의 의미’를 다시 쓰는 실험실에 가까웠습니다. 각자 마이크를 잡고 프로젝트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했을 때는 사실 ‘좌절’, ‘이슈’, ‘막막’ 같은 무거운 단어가 먼저 흘러나왔습니다. “기획했던 인원의 절반도 모으지 못했다”, “협력을 제안했지만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고백들이 이어지는 현장의 공기는 다소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발표 후 ‘피어 피드백(Peer Feedback)’이 시작되자 현장의 온도가 급격히 변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열띤 질문과 토론으로, 숫자로 드러난 결과값 뒤에 숨겨진 진짜 가치와 배움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계획했던 10곳의 협력 기관 중 5곳밖에 만나지 못했고 실제 사업도 성사되지 않았다’는 결과는 숫자만 보면 분명 ‘실패’입니다. 목표값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소셜디자이너적 사고’로 바라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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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3 중간공유회에는 스테이지 1~2에 참여한 참가자들도 자리했다. ⓒ희망제작소


‘소셜디자이너 바인더’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이름조차 몰랐을 지역사회의 중간지원 조직을 5곳이나 알게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담당 부서와 실무자를 파악하고 교류하며 그곳의 지원 사업 주기와 방향까지 학습한 것은 분명한 성과입니다. “스테이지3가 끝나도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 대한 고민과 시도를 계속 하실 거잖아요. 지금 쌓은 5곳과의 네트워크와 정보는 다음 단계에서 가장 단단하고 중요한 자원이 될 거예요” 동료들의 말에 목소리가 작아졌던 참가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집니다.

이런 전환이 가능한 이유는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가 수직적인 ‘전문가 컨설팅’이 아닌, 수평적인 ‘피어 러닝(Peer Learning)’ 에 기반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 컨설팅은 문제를 빠르게 정리하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피어 러닝은 속도는 비교적 느리더라도 각자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단계’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내가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옆 사람도 똑같이 겪고 있다는 동질감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심리적 안전망이 됩니다.


전환의 기술, 예비 소셜디자이너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2월 28일, 예비 소셜디자이너 4명의 첫 실험을 매듭짓는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 : 스테이지3 결과공유회>가 개최됩니다. 이들이 직접 마주한 현장의 고민과 새롭게 찾아낸 실험의 가능성을 갈무리하여 곧 생생한 기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는 정해진 성공의 문법을 따라가는 교육이 아닙니다. 각자의 질문을 꺼내 쓰고, 서로의 실패를 경청하며 함께 길을 찾는 ‘세상에 없던 커뮤니티’에 가깝습니다. 희망제작소는 현장에서의 충돌을 ‘성장을 위한 다음 페이지’로 해석하며, 그 질문이 길을 잃지 않도록 개인의 고민을 지역문제 해결로 번역해내는 든든한 징검다리가 되려 합니다. 

희망제작소가 이토록 ‘실험’과 ‘연결’에 집중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감각을 가진 더 많은 사회문제해결자, 즉 소셜디자이너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전환기에서 자기 고민과 사회 문제를 연결해보는 시도를 시작하는 예비 소셜디자이너의 의지를 뒷받침할 교육, 자원, 네트워크는 늘 부족한 실정입니다. 

‘2025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 설문 결과는 그 간절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참여 시민의 92.3%(96명)가 “소셜디자이너처럼 지역사회문제 해결 활동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응답을 보였는데요. 동시에 실행하고 있지 못하는 이유로 ‘자본과 비용의 부족(44.2%)’, 그리고 ‘함께 할 사람과 네트워크 부족(42.3%)’을 꼽았습니다. 활동을 위해 필요한 지원 역시, ‘자금, 투자(70.2%)’와 ‘지역사회 협력(58.7%)’, ‘동료(42.3%)’가 가장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결국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만드는 사회혁신가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질문을 찾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자원과 같은 고민을 가진 동료가 필요합니다.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는 시민의 막막함을 질문으로 확인하고, 고민이 지역과 연결되는 실험으로 이어지는 길을 더 많은 이들과 걸을 수 있도록, 다음 페이지를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희망제작소와 함께 시민이 지역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자원과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파트너를 환영합니다🙌


👉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 : 프리-시즌 모집
👉 소셜디자이너의 바인더 : 스테이지1 & 스테이지2 후기



글/사진: 최나현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선임연구원

📞 소셜디자이너 바인더 프로그램 문의 : 사회혁신팀  02-6395-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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