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어느 싱어송라이터가 남해에서 사는 법

2026-02-24

누렁이 몽덕이와 희망제작소가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을 찾아 방방곡곡을 다닌 원정기 <몽덕 희망 원정대>, 김소민 연구위원이 몽덕이와 함께 좌충우돌 책방 도전기<안 망할지도 몰라, 남해 동네책방>, <몽덕이와 남해 지역살이>를 이어갑니다. 


촌집을 리모델링한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누군가 분필로 ‘안지원 바보’라고 써놓았습니다. 옛 나무 창살을 살린 창으로 노란빛 백열등 불빛이 흘러나옵니다. 2025년 12월26일 아직 이름이 없는 게스트하우스의 개장 겸 연말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2017년 ‘카카카’란 이름으로 경남 남해에 온 청년들이 손수 고쳐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입니다. ‘당근’에서 득템한 소파와 나무 책장을 놓은 내부가 포근합니다. 

작은 방,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안지원(35·별명 꼬막)이 기타를 안고 앉아 있습니다. 친구들은 빼곡히 방바닥에 쪼그리거나 섰습니다. 그의 작은 콘서트가 열렸어요. 지원은 최근 ‘아마추어의 집’이란 앨범을 냈습니다. 친구들은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살랑살랑 살랑살랑/ 잠이 오네/ 나를 막지 말아요/ 집에 갈 거예요”(‘춘곤증’)


‘카카카’ 멤버였던 지원은 서울과 남해를 오가다 2018년 9월 아예 남해로 이주했습니다. ‘춘곤증’은 그 시절을 담은 노래예요. “친구들이 기타를 돌려가며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멋있어서 저도 처음으로 가사를 써봤어요. 친구한테 보여줬더니 ‘어,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면서 코드를 뚱땅뚱땅 치더라고요. 충격이었어요. 노래가 되네!”

지원은 집에 도착했을까요? “내가 속할 곳은 어디인가?” 오랜 결핍은 그의 동력이기도 했습니다. 세 자매 중 둘째인 지원은 서울 송파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약사, 교사인 부모는 그가 운전면허도 강남에서 따길 바랐답니다. “약대 가라.” “싫은데.” “변호사 해라.” “싫은데.” “공무원 해라.” “싫은데.” “양가에서 저만 ‘좌빨’이에요. 저만 왜 그렇게 다른지 미스터리예요. 엄청나게 외로웠어요.”

대학 때 근로장학생으로 경력개발센터에서 일하며 선배들 자기소개서를 읽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2014년 서울시 청년사회혁신가 양성 과정을 마치고 사회적기업에서 문화기획을 했습니다. “제3섹터에 가보니 대개 대안학교 나오고 부모는 진보 운동권인 사람들인 거예요. 저는 대학 때도 운동권에 대해서는 아예 몰랐어요. 제 배경이 창피했어요. 쭈구리였어요. 소속감을 못 느끼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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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연주하는 안지원 씨

 

“아무래도 이상해/ 왜 이럴까 생각해… 멀리 떠나고 한동안 잊어도/ 소용은 없었고 더 외로워졌지”(‘술래잡기’)

남해 선구마을, 태풍이 불면 곧 무너질 거 같던 집에 그와 두 친구가 상주했습니다. “재밌고 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보조금 사업으로 ‘무인도 영화제’를 열었습니다. 두 친구는 예술대학을 막 졸업했고 그는 그때까지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끈 적이 없었어요. “안 되겠구나. 이 친구들이랑은 지향이 달랐어요. 답답하고 화나고. 제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마을 사람들과 교류도 기대했는데 잘 안 됐어요.” 서울로 올라가기 전 그는 마을 할머니를 찾아갔어. 지원이 농사짓고 싶다고 하니 할머니가 70평 땅을 내줬었습니다. 돌이 유독 많았습니다. 감자, 고추, 깨, 고구마 여러 종류 심었지만 다 잘 자라지 못했어요. 그나마 건진 고구마를 할머니에게 드리려 했는데 할머니가 더 많은 고구마를 그의 품에 안겼다. 지원은 울었습니다. “서러웠던 거 같아요. 또다시 내가 속할 곳을 찾아야 하나? 어디서?”

2019년 말 서울로 돌아온 그는 환경단체에서 일했는데 코로나19가 닥쳤습니다. 회사 인원 감축으로 잘렸어요.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졌습니다. “10여 년 동안 제3섹터에서 기성세대가 뭘 일궜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번아웃과 자금조달에 시달리고 노답인 거예요. 믿고 쫓아갈 선배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살아야 하지?”

표류하는 와중에도 ‘집’ 찾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다. “정말 정말 노력했어요.” 각종 워크숍과 모임을 쫓아다녔습다. “나랑 놀자.” “밥해줄게, 우리 집에 와.”

그가 떠난 사이 남해에 남은 ‘카카카’ 친구들은 출판, 디자인 등 여러 일을 벌였습니다. 문제는 돈이었어요. 친구들 28명에게 투자받아 건물을 사고 비건 카레집을 열었습니다. 그는 2022년 남해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에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았고요, 남해에서 저만의 가사를 더 잘 쓸 수 있을 듯했어요.” 이제 그는 집을 찾았을까?


“나의 집, 나의 꿈, 나의 리듬, 나의 자유로운 몸. 자유로운 네 발로 춤을 춰. 작은 울타리 밖 세상은 푸르고 넓은 초원이 아니었어. 좁은 골목길을 달려.”(‘얼룩말’)


안지원의 작은 콘서트.

안지원의 작은 콘서트 


얼룩말이 당도한 곳은 ‘회의 지옥’이었습니다. “의사결정이 자꾸 번복됐어요. 돈이 궁해지니 더 예민해졌어요. 제가 엄청나게 성질부렸죠. 그 시절 공황 같은 게 와서 한동안 말을 못했어요.” 다섯 명 중 둘이 남해를 떠났습니다. “남해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카카카’ 이외의 다른 친구들을 사귀기로 했어요.”

다시 “나랑 놀자” “같이 밥 먹자” “우리 집에 놀러 와” 그리고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노래를 만들 때 그는 “충만했다”고 합니다. ‘카카카’는 각자 일하되 필요하면 함께하는 느슨한 협업체 ‘카카카친구들’이 됐습니다. 그는 문화기획 쪽 용역을 여럿 했어요. 관광업 종사자와 청년을 잇는 연결학교, 로컬포럼 등을 꾸렸습니다. 비건 카레집은 카페 ‘키읔’으로 바뀌었고 게스트하우스는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살았던 집에 네가 살고 막걸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대로/ 할머니가 살았던 집에 네가 살고 좋은 향이 배어 있는 것은 그대로/ 봄비를 기다리는 것은 그대로”(‘필주’)

서른 살 필주는 지원의 친구입니다. 혼자 농사짓는 필주에겐 든든한 뒷배, 여성농민회 언니들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월세 10만원에 마당과 창고, 텃밭이 딸린 촌집에 사는데 할머니가 살다 비어 있던 집을 농민회 언니들이 구해줬습니다. “필주는 농민회 언니들을 통해 일면식도 없는 할머니와 연결됐죠. 이 노래가 제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인 거 같아요.”

그날 파티에 여성농민회 언니들이 왔습니다. 지원을 부르더군요. “매달 10만원씩 우리가 너를 지원하기로 했어. 농어민은 정부지원금이 있지만 예술가는 하나도 없잖아. 진즉 해야 했는데. 너는 그냥 가끔 노래 불러주면 돼.”

남해군이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지로 선정돼 2026년부터 군민 모두가 매달 15만원씩 지역화폐를 받는데, 일부를 그렇게 쓰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언니들이라니! 놀랐습니다. 저는 기본소득 나오면 주유하려고 했거든요.  “제 인생에 이런 호혜가 있을까? 제가 살았던 세상의 규칙은 각박했거든요. 부모님은 항상 사기꾼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이 돈으로 과자 사먹을 순 없죠. 농민회에도 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소중한 일에 쓰고 싶어요. 뭔가 막 하고 싶어요.”

이날 지원과 친구들은 선물을 나누고 버킷리스트를 썼습니다. “바라는 삶을 쟁취하려고 정말 정말 노력했고 지금이 좋다”는 지원은 집에 도착한 거 같았습니다.


글/사진: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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