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동네에서부터 시작하는 민주주의

2025-07-01

시민이 말하는 '내 일상의 민주주의'

계엄령 사태와 조기 대선을 겪으며, 시민들은 어떤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있을까요?

법과 제도를 넘어, 우리는 ‘일상 속 민주주의’를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가 지난 6월 실시한 <시민의 일상 속 민주주의 인식조사> 설문조사 참여자 중

인터뷰에 응해주신 시민 3인(30대·40대·50대/익명)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이들의 삶과 시선 속에 깃든 민주주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 해당 인터뷰는 지난 6월 24일 희망제작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동네에서 시작하는 민주주의



Q. 지난해 계엄령 사태와 조기 대선을 겪으며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드셨나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황당했어요. ‘갈 데까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었죠. 저는 현재 주민자치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고, 동네를 중심으로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거든요. 알고 지내는 시민단체 활동가 친구들을 보면 당시 충격도 크고, 혼란도 컸습니다. 계엄령 발표 이후 탄핵까지 이어지는 몇 달 동안 무기력해하거나, 심리적인 치유가 필요할 정도로 답답해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Q. 계엄령 선포하던 그날 기억나세요?

그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마침 프랑스 여행 중이던 친구가 ‘지금 한국에 들어가야 하냐’며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죠. 그때 처음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어요. 너무 황당해서, 놀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계엄이래, 계엄” 이러면서 갑자기 말들이 많아졌죠. 그런데 옆 테이블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술을 마시고 있어서, 현실감이 떨어졌어요. ‘이게 정말 계엄이 맞나?’ 하는 혼란이었죠. 집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음 날이 되어서야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됐습니다.

Q. 과거에도 계엄령을 겪어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초등학교 때 아현동에 살았어요. 그때는 ‘계엄’이라는 개념도 몰랐지만, 집 뒷마당에서 굴레방 다리가 보이는 거리에서 대학생들이 시위하고 구호 외치는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최규하 물러가라” 같은 구호도 들렸지만, 그 의미를 알지는 못했죠. 다만 그 장면 자체가 굉장히 강렬하게 기억돼 있어요.


민주주의, 절차만 남고 목소리는 사라진 듯


Q. 서로 다른 의견은 어떻게 나누나요?

친한 친구들과는 정치 이야기도 자유롭게 해요. 때로는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다들 갈등을 피하려고 조절하려는 편이에요. 친한 사이일수록 오히려 의견 차이를 더 솔직하게 표현하죠. 반면, 관계가 깊지 않거나 동네 유지들과의 관계에서는 접근 방식을 완전히 달리합니다. 적당히 듣고 반응을 조절하거나, 너무 과한 발언이 나오면 말 한마디 정도로 경각심을 주고 그치는 편이죠.

Q. 주민자치회 활동 중에 생각이 다른 주민들과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저희 주민자치회는 과거 수십 년간 사무국장을 맡았던 분들의 카르텔이 존재했고, 최근에서야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극단적인 정치 발언도 심심찮게 들려왔습니다. 예컨대 “이재명이 되면 군복 입고 총 쏘겠다”는 폭력적 발언도 있었어요. 이런 발언은 유튜브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화된 메시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분들도 동네 일에선 진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사는 깍듯이 합니다. 발언이나 성향은 다르고 때로는 과격하더라도, 그분들이 동네에서 나름대로 쌓아온 기여는 인정해야 하니까요. 너무 심한 경우에는 조심스럽게 반론을 던지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Q. 온라인, 친구, 가족 간 의사 표현 방식이 달라지나요?

온라인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아요. 예전엔 블로그도 했지만, 지금은 SNS가 너무 개인화돼 있고, 중심이 그쪽으로 쏠리는 걸 원하지 않아 계정도 운영하지 않고 있어요. 친구들 모임에서는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편이고요. 오히려 정치보다 여성 이슈 같은 주제로 더 자주 토론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약간 진보적인 성향인데, 가족은 정치 성향이 저랑 정반대예요. 지난 총선 때, 각자 바쁜 와중에 오랜만에 모이자며 개표 당일 가족여행을 갔는데, 개표 방송을 보다가 밤새 싸웠어요. 결국, “우린 선거 개표 날엔 절대 다시 모이지 말자”는 합의를 하게 됐죠.

Q.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나요?

중간이 없죠. 완전히 양쪽으로 갈라진 느낌이에요. 저는 정치인의 책임이 크다고 봐요. 전쟁과 분단 이후 누적된 사회적 트라우마가 정치적으로 치유되지 않고 오히려 활용돼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탄핵 국면 당시 태극기 집회 근처를 지나가며 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노인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막말을 쏟아내는 걸 보며, 전쟁 당시의 상처나 감정이 지금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자신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자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어요.


민주주의는 제도보다 일상의 대화에서 시작해


Q.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언론에서는 민주주의가 과거보다 체계화되고 안정화됐다고 말하지만, 저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이 정도로 국민들이 거리로 나섰다면 이미 하야가 이뤄졌어야 했어요. 절차적 민주주의만 강조하고, 시민의 직접적인 목소리는 오히려 더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죠. 민주주의란 단순히 제도가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변화로 연결하는 과정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절차대로’라는 말로 정당성만 주장하는 모습에서 민주주의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Q. 앞으로 민주주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오히려 소수자나 지역에서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어요. 마을에서 성소수자나 페미니즘 이야기를 꺼내기가 예전보다 더 힘들어졌거든요.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며 중간지대가 거의 사라졌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바뀌어야 해요. 닫힌 민주주의가 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중앙 정치 중심의 시위나 운동을 너머 지역 기반의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귀농한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시골에서 촛불을 들어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요. 결국 지역 주민들 간의 일상적 대화, 토론, 자조 모임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져야 해요. 옛날 반상회처럼 생활 기반에서 자발적인 논의 구조가 다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시민의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죠. 중앙 정치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라, 동네에서 서로 갈등을 겪고, 풀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바꾸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이번에 희망제작소 설문조사와 인터뷰에 참여하면서 ‘그래, 이런 연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말에는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윤석열 정부 시절의 답답함은 단순히 '그만둬라'는 요구가 아니라,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억눌린 데서 비롯된 문제라고 봅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구조는 그대로이고, 진짜 민주주의의 확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문결과 보기



시민 3명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민주주의는 제도보다 일상 속 태도와 관계에서 실현된다는 점입니다. 거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시민들이 느끼는 갈등과 균열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말할 수 있는 환경, 다름을 견디는 경험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다는 인식도 이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은 불편하고 때론 아프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과정처럼 보입니다. 정치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내가 말할 수 있는 자리를 상대방에게도 열어주고 지켜내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방연주 시민연결팀 연구위원

후원문의 02-6395-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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