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말하는 '내 일상의 민주주의'
계엄령 사태와 조기 대선을 겪으며, 시민들은 어떤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있을까요?
법과 제도를 넘어, 우리는 ‘일상 속 민주주의’를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가 지난 6월 실시한 <시민의 일상 속 민주주의 인식조사> 설문조사 참여자 중
인터뷰에 응해주신 시민 3인(30대·40대·50대/익명)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이들의 삶과 시선 속에 깃든 민주주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 해당 인터뷰는 지난 6월 28일 익명 전화 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꿈꾸는 민주주의

Q. 계엄령 사태와 조기 대선을 거치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처음엔 정말 두려웠어요. 내란을 일으킨 세력이 오히려 당당하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모습을 보면서요.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사회를 뒤흔드는 세력의 힘이 너무 막강했죠. 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 보니 민주주의나 헌정 질서가 비교적 견고하다고 믿어왔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 그것이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절실하게 경험했어요. 그 믿음이 깨졌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습니다.
Q. 계엄령 선포 당시 기억나시나요?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하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거죠. 너무나 예측 불가능하고 상식 밖의 상황이었어요. 한편으로는, 그래도 우리나라 법 체계가 그렇게까지 무너지진 않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도 있었어요. 실제로 계엄령이 선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SNS를 통해 법학자나 전문가들이 ‘불법 개헌’이라고 밝히는 글들을 보면서 조금 안심됐던 기억이 납니다.
Q. 주변과 의견을 자주 나누는 편인가요?
진보당 당원이긴 한데, 열혈 당원이라기보다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공동체 분들과 교류하고 있어요.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하고요. 사회적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남편과도 정치적인 공감대가 있어 다행이죠. 하지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 정치적으로 갈등을 겪는 분들도 많다 보니, 그럴 땐 정말 안타까워요.
광장에서 배운 연대의 힘, 그리고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Q. 계엄령 사태 이후에도 그런 의견 교류가 이어졌나요?
네, 같은 생각을 가진 지인들이 옆에 있어서 많이 위로가 됐어요. 처음엔 거리도 멀고 아이들도 어려서 집회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계속 지켜보다 보니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을 꽁꽁 싸매고 함께 거리로 나갔어요. 솔직히 저희가 무슨 법을 알겠어요? 하지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거리에서 외친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인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힘이니까요. 그 에너지가 저에게도 큰 힘이 됐어요.
Q. 집회 현장에서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도 보셨을 텐데요.
맞아요. 탄핵 찬성 집회에 가면서 반대 집회 현장을 지나치게 되는데, 과거엔 어르신들이 동원돼 나온 행사 정도로만 여겼거든요. 그런데 실제 현장을 보니 전혀 달랐어요. 굉장히 조직화되어 있었고, 집회 방식도 탄핵 찬성 집회와 유사했어요. 젊은 부부들도 꽤 있었고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아이 손에 태극기를 들려 종로를 도는 가족을 세 번이나 마주쳤어요. 그만큼 치밀하고 반복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Q.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요즘 거리에서 중도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설득이 불가능한 ‘굳어진 의식’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사람은 좋은데 말이 안 통한다’는 상황 자체가 슬프죠. 이건 단순히 이념 문제가 아니라 공감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의 부재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포용이 필요하다고 봐요. 내란 세력은 분명 처벌받아야 하지만, 이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라져서는 안 되잖아요.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할 시민이고, 특히 고립된 청년들이 왜 극단에 몰리는지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돌아봐야 해요. 그들을 이해하고 품는 방식, 그게 진짜 민주주의 아닐까요?
Q. 온라인 공간에서는 어떻게 의견을 표현하시나요?
온라인에서는 조심스럽죠. 특히 직장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삼가는 편이에요. 대신 뉴스를 보고 기사를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요. 요즘은 유튜브나 커뮤니티 알고리즘이 확증편향을 강화하면서, 오히려 의견을 밝히기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민주주의의 다음 세대, 교육에서 시작해야
Q. 일상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민주주의는 하나의 생물처럼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AI 시대로 접어들었고, 우리가 알고 있던 고전적인 민주주의 개념만으론 부족하다고 느껴요. 단순히 헌법이나 제도, 다수결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시대잖아요.
미래에는 새로운 윤리, AI 기술, 디지털 환경에 맞춘 ‘미래형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시민으로서 저 같은 사람들도 그걸 접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Q.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육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학부모로서 교육에 특히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요즘 학교 현장을 보면 걱정이 앞서요. 민주주의 교육이 영상 한 편으로 대체되는 현실을 보면요. 아이들이 직접 토론하고, 다양한 의견을 듣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기회가 거의 없어요. 게다가 교사들의 교권이 무너진 현실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상태로는 비판적 사고력을 갖춘 시민이 자라기 힘들겠죠. 미래의 민주주의를 위해 교육 현장에서부터 제대로 된 민주시민 교육이 시작돼야 해요.
Q. 앞으로 바라는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시민과 교육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요. 그리고 결과만 빠르게 원하는 시대일수록 ‘과정’을 존중하는 문화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는 포용과 비판, 감시와 참여가 동시에 가능해야 하잖아요. 저는 우리가 이 체제를 단단히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문조사 결과보기
시민 3명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민주주의는 제도보다 일상 속 태도와 관계에서 실현된다는 점입니다. 거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시민들이 느끼는 갈등과 균열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말할 수 있는 환경, 다름을 견디는 경험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다는 인식도 이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은 불편하고 때론 아프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과정처럼 보입니다. 정치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내가 말할 수 있는 자리를 상대방에게도 열어주고 지켜내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방연주 시민연결팀 연구위원
시민이 말하는 '내 일상의 민주주의'
계엄령 사태와 조기 대선을 겪으며, 시민들은 어떤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있을까요?
법과 제도를 넘어, 우리는 ‘일상 속 민주주의’를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가 지난 6월 실시한 <시민의 일상 속 민주주의 인식조사> 설문조사 참여자 중
인터뷰에 응해주신 시민 3인(30대·40대·50대/익명)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이들의 삶과 시선 속에 깃든 민주주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 해당 인터뷰는 지난 6월 28일 익명 전화 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꿈꾸는 민주주의
Q. 계엄령 사태와 조기 대선을 거치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처음엔 정말 두려웠어요. 내란을 일으킨 세력이 오히려 당당하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모습을 보면서요.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사회를 뒤흔드는 세력의 힘이 너무 막강했죠. 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 보니 민주주의나 헌정 질서가 비교적 견고하다고 믿어왔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 그것이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절실하게 경험했어요. 그 믿음이 깨졌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습니다.
Q. 계엄령 선포 당시 기억나시나요?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하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거죠. 너무나 예측 불가능하고 상식 밖의 상황이었어요. 한편으로는, 그래도 우리나라 법 체계가 그렇게까지 무너지진 않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도 있었어요. 실제로 계엄령이 선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SNS를 통해 법학자나 전문가들이 ‘불법 개헌’이라고 밝히는 글들을 보면서 조금 안심됐던 기억이 납니다.
Q. 주변과 의견을 자주 나누는 편인가요?
진보당 당원이긴 한데, 열혈 당원이라기보다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공동체 분들과 교류하고 있어요.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하고요. 사회적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남편과도 정치적인 공감대가 있어 다행이죠. 하지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 정치적으로 갈등을 겪는 분들도 많다 보니, 그럴 땐 정말 안타까워요.
광장에서 배운 연대의 힘, 그리고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Q. 계엄령 사태 이후에도 그런 의견 교류가 이어졌나요?
네, 같은 생각을 가진 지인들이 옆에 있어서 많이 위로가 됐어요. 처음엔 거리도 멀고 아이들도 어려서 집회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계속 지켜보다 보니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을 꽁꽁 싸매고 함께 거리로 나갔어요. 솔직히 저희가 무슨 법을 알겠어요? 하지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거리에서 외친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인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힘이니까요. 그 에너지가 저에게도 큰 힘이 됐어요.
Q. 집회 현장에서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도 보셨을 텐데요.
맞아요. 탄핵 찬성 집회에 가면서 반대 집회 현장을 지나치게 되는데, 과거엔 어르신들이 동원돼 나온 행사 정도로만 여겼거든요. 그런데 실제 현장을 보니 전혀 달랐어요. 굉장히 조직화되어 있었고, 집회 방식도 탄핵 찬성 집회와 유사했어요. 젊은 부부들도 꽤 있었고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아이 손에 태극기를 들려 종로를 도는 가족을 세 번이나 마주쳤어요. 그만큼 치밀하고 반복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Q.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요즘 거리에서 중도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설득이 불가능한 ‘굳어진 의식’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사람은 좋은데 말이 안 통한다’는 상황 자체가 슬프죠. 이건 단순히 이념 문제가 아니라 공감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의 부재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포용이 필요하다고 봐요. 내란 세력은 분명 처벌받아야 하지만, 이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라져서는 안 되잖아요.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할 시민이고, 특히 고립된 청년들이 왜 극단에 몰리는지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돌아봐야 해요. 그들을 이해하고 품는 방식, 그게 진짜 민주주의 아닐까요?
Q. 온라인 공간에서는 어떻게 의견을 표현하시나요?
온라인에서는 조심스럽죠. 특히 직장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삼가는 편이에요. 대신 뉴스를 보고 기사를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요. 요즘은 유튜브나 커뮤니티 알고리즘이 확증편향을 강화하면서, 오히려 의견을 밝히기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민주주의의 다음 세대, 교육에서 시작해야
Q. 일상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민주주의는 하나의 생물처럼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AI 시대로 접어들었고, 우리가 알고 있던 고전적인 민주주의 개념만으론 부족하다고 느껴요. 단순히 헌법이나 제도, 다수결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시대잖아요.
미래에는 새로운 윤리, AI 기술, 디지털 환경에 맞춘 ‘미래형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시민으로서 저 같은 사람들도 그걸 접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Q.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육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학부모로서 교육에 특히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요즘 학교 현장을 보면 걱정이 앞서요. 민주주의 교육이 영상 한 편으로 대체되는 현실을 보면요. 아이들이 직접 토론하고, 다양한 의견을 듣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기회가 거의 없어요. 게다가 교사들의 교권이 무너진 현실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상태로는 비판적 사고력을 갖춘 시민이 자라기 힘들겠죠. 미래의 민주주의를 위해 교육 현장에서부터 제대로 된 민주시민 교육이 시작돼야 해요.
Q. 앞으로 바라는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시민과 교육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요. 그리고 결과만 빠르게 원하는 시대일수록 ‘과정’을 존중하는 문화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는 포용과 비판, 감시와 참여가 동시에 가능해야 하잖아요. 저는 우리가 이 체제를 단단히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문조사 결과보기
시민 3명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민주주의는 제도보다 일상 속 태도와 관계에서 실현된다는 점입니다. 거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시민들이 느끼는 갈등과 균열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말할 수 있는 환경, 다름을 견디는 경험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다는 인식도 이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은 불편하고 때론 아프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과정처럼 보입니다. 정치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내가 말할 수 있는 자리를 상대방에게도 열어주고 지켜내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방연주 시민연결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