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제작소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 속 생각과 태도를 통해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디쯤 와 있는지 짚어보고자 <시민의 일상 속 민주주의 인식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법과 제도를 다루는 전문가뿐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설문 응답 중심의 콘텐츠(링크)와 함께 설문 응답 중 유의미한 내용 중심으로 분석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일상 속 민주주의에 관한 고민을 나눠봅니다.
민주주의 사회, 무엇이 가장 후퇴했을까
희망제작소는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요인으로 △이해와 존중 △비판적 사고 △법과 규칙의 준수 △협력과 연대 △표현의 자유를 제시했습니다.
응답자 397명은 계엄령 사태를 겪고 난 이후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이해와 존중’, ‘법과 규칙 준수’가 가장 후퇴했다고 봤습니다. ‘매우 후퇴’ 또는 ‘후퇴’했다는 답변이 ‘이해와 존중’에서 66%, ‘법과 규칙 준수’에서는 60%를 차지했습니다.
‘협력과 연대’, ‘표현의 자유’, ‘비판적 사고’는 ‘발전’했다는 응답이 다소 높게 나왔으나 ‘후퇴’했다는 응답도 비슷한 수준을 차지했습니다. 응답자들은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특성이 전반적으로 후퇴한 것으로 봤습니다.

표.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의 특성입니다. 12.3 계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 사회는 다음 특성에서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해와 존중’이 후퇴했다는 의견이 높았던 배경으로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며 타인을 ‘이해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과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반(反)민주주의의 마음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계엄으로 인해 국가 권력에 대한 신뢰, 시민 간 신뢰가 줄어들었고,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할 이유가 약화된 영향도 있습니다.
유튜브와 SNS 등 알고리즘 기반의 미디어가 급속도로 확산되며,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내용에 노출되는 ‘필터 버블’이 일어난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볼 수 있는데요. 이로 인해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이 줄고 분노와 혐오가 확산된 측면도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진행한 <민주주의X마음 프로젝트>에서 김현수 교수(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저신뢰사회가 한국을 급속히 와해시키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저신뢰 사회가 치르는 대가는 혹독합니다. 김 교수는 "사회통합적이기보다 분열적으로 작동하는 언론과 방송은 우리 사회를 갈가리 찢고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숙고·숙의를 통해 갈등을 중재하고 인내심을 갖고 지혜를 찾기보다 발본색원, 처벌, 징계, 민원 등이 빈번하다. 교육, 의료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습니다.(칼럼 링크)
‘법과 규칙의 준수’가 후퇴했다는 의견이 높았던 배경으로는 12.3 계엄으로 인해 법을 정치적 이유에 따라 편향되게 적용된다는 의심이 커진 데서 기인한 결과라고 봅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제 입맛대로 법 적용을 거부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모습을 보며 ‘법과 규칙을 준수해야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흔들린 것입니다. 특히 서부지법 난동사태는 사법부를 대상으로 폭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켰습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민주주의 제도는 그대로지만 시민들이 체감하는 민주주의는 후퇴한 것. ‘제도는 있지만 실제로는 안 지켜지고 있다’라는 정서적 회의가 짙어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나와 다른 당신, 우리는 듣고 싶을까
민주주의는 국회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가정과 직장,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친구와의 소소한 대화 속에서도 민주주의는 숨 쉬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우리는 얼마나 듣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을 마음이 있는지 물었는데요.
시사 이슈에 대해 나의 의견과 다른 주장에 대해 72%가 ‘알고 있다’ 혹은 ‘잘 알고 있다’고 답변하였으나, 이에 대해 들어볼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49%만이 긍정적으로 답했습니다.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다는 답변도 49%에 그쳤습니다.

표. 시사 이슈에 대해 나의 의견과 다른 주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표.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 마음이 있습니까

표.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습니까
설문조사를 보면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상대방의 주장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하거나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는 비교적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간극은 왜 발생할까요. 희망제작소는 정치적 피로감을 주목합니다. 사전 질문으로 실시했던 ‘시사 이슈를 얼마나 자주 접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거의 매일 시사 정보를 접한다’고 답할 정도(70%)로 시사 이슈에 대한 노출 빈도가 높은 응답자들은 타인의 의견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내용을 신뢰하지 않거나 이미 반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정치나 이념 문제가 감정적으로 치닫게 되면 이견은 더 이상 ‘다른 관점’이 아니라 ‘위협’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또한 언론이나 공론의 장에서 극단적인 언어가 주로 노출되다보니, 듣기 싫은 말은 아예 차단하고 싶은 경우도 생깁니다. 다른 의견을 들어보는 것 자체가 피로할 수 있습니다.
또 나와 다른 이들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들과 소통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설문으로 표출된 게 아닌지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정보 민주주의는 유지되고 있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관용 민주주의는 약화된 상태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내면적 위기를 보여줍니다. 즉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대화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 위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당신에게, 나는 말하고 싶을까
평소 시사 이슈에 대해 본인의 생각이나 신념을 표현할 기회가 있는 경우는 ‘매우 많다’ 혹은 ‘많다’가 62%로 높게 나타났는데, 실제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대면해 만날 기회가 있냐는 응답자는 50%에 그쳤습니다.

표. 평소 시사 이슈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나 신념을 표현할 기회가 있습니까

표. 평소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여 만날 기회가 있습니까
해당 설문 결과는 표현의 자유는 상당 부분 보장되고 있지만, 다양한 관점과 실제로 '대면하는 경험'은 부족하거나 제한적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표현은 하고 있지만 공명이 적다고 해야할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어느 정도 표현하고 있으나 동질적인 공간 안에서의 표현이 많아 의견의 다양성이 부재하거나 반복적 강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견을 가진 사람과의 직접적 대면 경험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생각이 다른 사람과 마주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지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말하는 자유’에 집중되어 있고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는 경험’은 풍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 관용과 숙의의 토대를 약화시킵니다. 정리하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는 존재하지만, 이견을 가진 타인과의 접촉 경험은 제한적으로 보입니다. 공존과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축에서 짚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나는 표현할까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의 의견 표현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요. 관계 유형은 △가족/친척 △친구 △직장동료 △지인이나 모임 구성원 △온라인공간에서 만나는 사람(SNS) △온라인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단체 채팅방)△온라인공간에서 만나는 사람(커뮤니티, 카페) 등으로 세분화해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표. 다음 사람들과 시사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이 있는 경우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그 결과 ‘가족/친척’, ‘친구’를 제외하고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이 높았습니다. ‘표현한다’라는 긍정적 답변은 ‘가족/친척’ 62%, ‘친구’ 68%로 나타났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서도 50% 내외로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높게 나왔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관계에 따라 표현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함을 보여줍니다. 시사 이슈에 대한 자기 표현이 관계의 친밀성과 안정성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고, 익명성이나 공개성이 높은 공간일수록 자기 검열이나 침묵이 강화되는 경향을 띱니다.
가족과 친구는 관계의 지속성과 정서적 신뢰가 높기 때문에 시사 이슈를 말해도 관계가 단절될 위험이 적은 반면 직장이나 모임은 역할, 평판, 위계가 얽혀 있어 의견 표현이 불이익, 갈등,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클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시사 이슈나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게 ‘무례하다’, ‘민감하다’, ‘분위기를 깬다’는 인식이 강한데요. 이로 인해 비정치적 척, 중립적 척하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또한 온라인 공간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개성과 확산성 때문에 되려 자기검열이 강해지는 공간입니다. 댓글 공격, 사이버 혐오, 정치적 낙인 등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 있습니다.
시사 이슈에 대한 자기 표현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는 활발히 이루어지지만, 사회적 위계나 익명성이 개입된 공간에서는 크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법적 권리가 아닌 사회적 용기와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문화적 기반을 확장하기 위한 제도적·문화적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민주주의X 마음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승욱 정신분석클리닉 '닛부타의 숲' 대표는 서부지법 사태를 두고 "노암 촘스키의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어떤 방식으로건 허용되어야 한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문제의 이름이다'라는 슬라예보 지젝의 말도 민주주의의 본령에 대한 경구로 삼아 보면 조금 더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민주주의는 결국 실격자들도 품어야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칼럼 링크)
2024년 추운 겨울, 믿기지 않는 계엄령 사태를 겪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민주주의’의 훼손을 목도하며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분노하기도,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누군가는 차가운 길바닥 위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꼬리를 물고 나온 ‘일상 속 민주주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단순해 보여도 참 풀어내기 어려웠습니다.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했으니까요. 민주주의의 틈을 뚫고 나온 이 질문에 관해 어디에서도 레퍼런스를 찾기 어려워 헤맨 시간, 희망제작소만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사업과 강연에 참여해주신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설문조사에 힘을 보태준 시민의 목소리에서 일상의 민주주의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글: 이규리 시민연결팀 선임연구원, 방연주 시민연결팀 연구위원

희망제작소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 속 생각과 태도를 통해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디쯤 와 있는지 짚어보고자 <시민의 일상 속 민주주의 인식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법과 제도를 다루는 전문가뿐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설문 응답 중심의 콘텐츠(링크)와 함께 설문 응답 중 유의미한 내용 중심으로 분석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일상 속 민주주의에 관한 고민을 나눠봅니다.
희망제작소는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요인으로 △이해와 존중 △비판적 사고 △법과 규칙의 준수 △협력과 연대 △표현의 자유를 제시했습니다.
응답자 397명은 계엄령 사태를 겪고 난 이후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이해와 존중’, ‘법과 규칙 준수’가 가장 후퇴했다고 봤습니다. ‘매우 후퇴’ 또는 ‘후퇴’했다는 답변이 ‘이해와 존중’에서 66%, ‘법과 규칙 준수’에서는 60%를 차지했습니다.
‘협력과 연대’, ‘표현의 자유’, ‘비판적 사고’는 ‘발전’했다는 응답이 다소 높게 나왔으나 ‘후퇴’했다는 응답도 비슷한 수준을 차지했습니다. 응답자들은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특성이 전반적으로 후퇴한 것으로 봤습니다.
표.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의 특성입니다. 12.3 계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 사회는 다음 특성에서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해와 존중’이 후퇴했다는 의견이 높았던 배경으로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며 타인을 ‘이해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과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반(反)민주주의의 마음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계엄으로 인해 국가 권력에 대한 신뢰, 시민 간 신뢰가 줄어들었고,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할 이유가 약화된 영향도 있습니다.
유튜브와 SNS 등 알고리즘 기반의 미디어가 급속도로 확산되며,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내용에 노출되는 ‘필터 버블’이 일어난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볼 수 있는데요. 이로 인해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이 줄고 분노와 혐오가 확산된 측면도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진행한 <민주주의X마음 프로젝트>에서 김현수 교수(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저신뢰사회가 한국을 급속히 와해시키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저신뢰 사회가 치르는 대가는 혹독합니다. 김 교수는 "사회통합적이기보다 분열적으로 작동하는 언론과 방송은 우리 사회를 갈가리 찢고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숙고·숙의를 통해 갈등을 중재하고 인내심을 갖고 지혜를 찾기보다 발본색원, 처벌, 징계, 민원 등이 빈번하다. 교육, 의료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습니다.(칼럼 링크)
‘법과 규칙의 준수’가 후퇴했다는 의견이 높았던 배경으로는 12.3 계엄으로 인해 법을 정치적 이유에 따라 편향되게 적용된다는 의심이 커진 데서 기인한 결과라고 봅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제 입맛대로 법 적용을 거부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모습을 보며 ‘법과 규칙을 준수해야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흔들린 것입니다. 특히 서부지법 난동사태는 사법부를 대상으로 폭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켰습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민주주의 제도는 그대로지만 시민들이 체감하는 민주주의는 후퇴한 것. ‘제도는 있지만 실제로는 안 지켜지고 있다’라는 정서적 회의가 짙어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민주주의는 국회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가정과 직장,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친구와의 소소한 대화 속에서도 민주주의는 숨 쉬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우리는 얼마나 듣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을 마음이 있는지 물었는데요.
시사 이슈에 대해 나의 의견과 다른 주장에 대해 72%가 ‘알고 있다’ 혹은 ‘잘 알고 있다’고 답변하였으나, 이에 대해 들어볼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49%만이 긍정적으로 답했습니다.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다는 답변도 49%에 그쳤습니다.
표. 시사 이슈에 대해 나의 의견과 다른 주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표.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 마음이 있습니까
표.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습니까
설문조사를 보면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상대방의 주장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하거나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는 비교적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간극은 왜 발생할까요. 희망제작소는 정치적 피로감을 주목합니다. 사전 질문으로 실시했던 ‘시사 이슈를 얼마나 자주 접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거의 매일 시사 정보를 접한다’고 답할 정도(70%)로 시사 이슈에 대한 노출 빈도가 높은 응답자들은 타인의 의견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내용을 신뢰하지 않거나 이미 반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정치나 이념 문제가 감정적으로 치닫게 되면 이견은 더 이상 ‘다른 관점’이 아니라 ‘위협’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또한 언론이나 공론의 장에서 극단적인 언어가 주로 노출되다보니, 듣기 싫은 말은 아예 차단하고 싶은 경우도 생깁니다. 다른 의견을 들어보는 것 자체가 피로할 수 있습니다.
또 나와 다른 이들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들과 소통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설문으로 표출된 게 아닌지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정보 민주주의는 유지되고 있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관용 민주주의는 약화된 상태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내면적 위기를 보여줍니다. 즉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대화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 위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평소 시사 이슈에 대해 본인의 생각이나 신념을 표현할 기회가 있는 경우는 ‘매우 많다’ 혹은 ‘많다’가 62%로 높게 나타났는데, 실제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대면해 만날 기회가 있냐는 응답자는 50%에 그쳤습니다.
표. 평소 시사 이슈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나 신념을 표현할 기회가 있습니까
표. 평소 시사 이슈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여 만날 기회가 있습니까
해당 설문 결과는 표현의 자유는 상당 부분 보장되고 있지만, 다양한 관점과 실제로 '대면하는 경험'은 부족하거나 제한적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표현은 하고 있지만 공명이 적다고 해야할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어느 정도 표현하고 있으나 동질적인 공간 안에서의 표현이 많아 의견의 다양성이 부재하거나 반복적 강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견을 가진 사람과의 직접적 대면 경험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생각이 다른 사람과 마주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지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말하는 자유’에 집중되어 있고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는 경험’은 풍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 관용과 숙의의 토대를 약화시킵니다. 정리하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는 존재하지만, 이견을 가진 타인과의 접촉 경험은 제한적으로 보입니다. 공존과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축에서 짚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의 의견 표현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요. 관계 유형은 △가족/친척 △친구 △직장동료 △지인이나 모임 구성원 △온라인공간에서 만나는 사람(SNS) △온라인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단체 채팅방)△온라인공간에서 만나는 사람(커뮤니티, 카페) 등으로 세분화해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표. 다음 사람들과 시사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이 있는 경우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그 결과 ‘가족/친척’, ‘친구’를 제외하고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이 높았습니다. ‘표현한다’라는 긍정적 답변은 ‘가족/친척’ 62%, ‘친구’ 68%로 나타났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서도 50% 내외로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높게 나왔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관계에 따라 표현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함을 보여줍니다. 시사 이슈에 대한 자기 표현이 관계의 친밀성과 안정성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고, 익명성이나 공개성이 높은 공간일수록 자기 검열이나 침묵이 강화되는 경향을 띱니다.
가족과 친구는 관계의 지속성과 정서적 신뢰가 높기 때문에 시사 이슈를 말해도 관계가 단절될 위험이 적은 반면 직장이나 모임은 역할, 평판, 위계가 얽혀 있어 의견 표현이 불이익, 갈등,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클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시사 이슈나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게 ‘무례하다’, ‘민감하다’, ‘분위기를 깬다’는 인식이 강한데요. 이로 인해 비정치적 척, 중립적 척하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또한 온라인 공간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개성과 확산성 때문에 되려 자기검열이 강해지는 공간입니다. 댓글 공격, 사이버 혐오, 정치적 낙인 등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 있습니다.
시사 이슈에 대한 자기 표현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는 활발히 이루어지지만, 사회적 위계나 익명성이 개입된 공간에서는 크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법적 권리가 아닌 사회적 용기와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문화적 기반을 확장하기 위한 제도적·문화적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민주주의X 마음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승욱 정신분석클리닉 '닛부타의 숲' 대표는 서부지법 사태를 두고 "노암 촘스키의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어떤 방식으로건 허용되어야 한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문제의 이름이다'라는 슬라예보 지젝의 말도 민주주의의 본령에 대한 경구로 삼아 보면 조금 더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민주주의는 결국 실격자들도 품어야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칼럼 링크)
2024년 추운 겨울, 믿기지 않는 계엄령 사태를 겪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민주주의’의 훼손을 목도하며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분노하기도,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누군가는 차가운 길바닥 위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꼬리를 물고 나온 ‘일상 속 민주주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단순해 보여도 참 풀어내기 어려웠습니다.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했으니까요. 민주주의의 틈을 뚫고 나온 이 질문에 관해 어디에서도 레퍼런스를 찾기 어려워 헤맨 시간, 희망제작소만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사업과 강연에 참여해주신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설문조사에 힘을 보태준 시민의 목소리에서 일상의 민주주의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글: 이규리 시민연결팀 선임연구원, 방연주 시민연결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