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 어르신의 ‘외로움’을 잇다

사회 곳곳에 ‘연결의 혁신가’들이 있습니다. 홀몸 어르신의 거주 환경을 개선하고, 이웃과의 연결을 통해 고립을 막는 보린주택. 보린주택을 지은 아이부키의 이광서 대표의 글을 소개합니다.

2013년 즈음 아이부키와 금천구의 사정

2013년 무렵 아이부키는 서울시가 조성한 500억 규모의 사회투자기금을 활용해 건물 신축 후 매각하는 SH공사 매입임대사업에 참여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공사가 요구하던 최소 기준에만 맞추어 집을 지어 매각하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업에 의미와 가치를 담고 싶었습니다.

당시 금천구청장이었던 차성수 전 구청장은 ‘홀몸어르신 맞춤 주택’을 짓고 싶어했는데 구에서 직접 시행하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2013년 10월, 필자와 차성수 전 구청장이 구청 엘리베이터 좁은 공간에서 두 손을 맞잡았습니다. 아이부키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기획을 원했고 금천구는 그 기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부싯깃에 불똥이 떨어져 불이 붙듯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 1층 공용공간에서 진행된 치매예방프로그램

홀로 남겨진 노인의 삶

금천구의 안내를 받아 관내 홀몸 어르신께서 사는 주택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매달 40여만 원의 수급비로 생활하고 이 중에 월세 지출은 15~17만 원가량이었습니다. 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고, 부엌도 욕실도 구분 없는 비좁은 공간, 집 밖의 공동화장실…참으로 팍팍한 생활이지만, 그 삶을 더욱 어렵게 하는 건 바로 고립되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드시 이들이 함께 모여 이웃이라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 설명: 2014년 기준 금천구에 거주하는 만 65세이상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월평균 소득의 39%(약 17만 원)을 주거비로 지출한다.

아무도 해본 적 없지만 간단한 솔루션

우리의 계획은 아이부키가 한국사회투자의 소셜하우징사업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짓고 이 집을 SH공사가 매입해 공공임대하면 금천구가 홀몸어르신 입주자를 모집하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방법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SH공사 매입임대사업에서 자치구가 입주자 선정 권한을 가진 사례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방법은 SH가 소득기준 등의 자격요건을 갖춘 모집자 중에서 추첨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금천구는 홀몸어르신만을 입주시키고 싶은 예외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부키와 금천구는 서울시와 SH공사 담당자를 부지런히 만나 이 사업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서울시-금천구는 협약을 맺었고 홀몸어르신 맞춤형 주택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홀몸어르신을 위한 집이 갖춰야 할 것

우리는 생활 속 불편과 위험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우선 5층짜리 건물이지만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고(당시 SH공사의 매입임대주택은 건설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조차 설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욕실에서 낙상을 막기 위해 미끄럼방지가 되는 타일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현관에 접이식 의자를 설치해 안정적으로 신발을 신을 수 있게 했으며, 안전손잡이와 시각화재경보장치(자동화재탐지설비에서 발하는 화재신호를 시각경보기에 전달하여 청각장애인에게 점멸형태의 시각경보를 하는 것)도 설치했습니다. 일반주택보다 더 많은 환기구, 안내등, 표시등을 추가해서 어르신들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섬세하게 배려했습니다.

▲ 보린주택 현관에 설치된 접이식 의자

무엇보다 물리적 고립을 막기 위해 함께 모일 공간을 계획하고 만드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공동취사가 가능한 공용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용공간을 냉난방비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해서 관리비 부담을 없앴습니다. 이런 규모의 도심 다세대주택에서 공용공간이 조성된 사례가 없어 조성비용을 보전받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맞춤형 매입임대주택에서 입주민의 생활양식에 따라 다양한 공유공간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감정평가 체계를 개선하려고 다방면으로 건의와 협의 및 연구를 지속해왔습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보린保隣

보린주택은 금천구 어르신 복지서비스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모일 수 있는 공용공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건물에 딸린 주차장은 인근 주민에게 유료로 개방하고 수익금을 주택관리비에 보태고 있습니다. 보린주택은 규모가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관리실과 관리소장이 있습니다. 건물의 관리뿐만 아니라 세금 납부나 병원 치료 등도 챙기고 있죠. 취약계층이 모여 살아도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관리가 잘되어 지역 주민들의 반감을 전혀 사지 않았습니다. 매입임대주택에 찍힌 도시 빈민들의 임대주택이라는 낙인을 해소하는 방안이 될 것이란 기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양한 테마를 가진 맞춤형 임대주택의 확산

매입임대주택이라는 제도는 도심에 소규모로 공급하려고 채택한 방법입니다. 2004년경 노무현 정부 때부터 민간주택사업자가 지은 주택을 SH공사가 매입해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했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매입임대주택을 매년 1000~2000호 꾸준히 공급해 도심 공공임대주택 소요에 긴요하게 대응했으나, 매입임대주택이 들어선 마을 주민들에게는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진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속적으로 민원이 발생하는 마을이 나와 서울의 몇몇 기초지자체에서는 공급을 말아달라고 서울시에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매입임대주택의 품질도 그리 좋지 못했고, 주택 관리는 최소한으로만 했던 탓에 커뮤니티는 싹도 트지 못하고 삭막한 공간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보린주택은 달랐습니다. 매입임대가 가진 한계를 ‘맞춤형’ 한마디로 훌쩍 넘어선 느낌입니다.

맞춤형이라는 새로운 옷과 기존 매입체계 문제

보린주택은 사회적 기업이 짓고 공기업이 매입하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민간기업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기획과 공공기관이 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와 현장을 잘 아는 자치구의 협업이 만들어 낸 성취입니다. 보린주택은 우리나라 최초로 지어진 홀몸어르신 맞춤형 매입임대주택(공공임대주택)입니다. 우리나라에 맞춤형 매입임대를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린주택 이후 맞춤형 매입임대는 서울시의 여러 자치구로 확산됐습니다. 성북구 청년창업자 맞춤주택 ‘도전숙’, 은평구 국가유공자 맞춤주택 ‘815숙’, 동작구의 모자안심주택, 도봉구 만화 창작자 맞춤주택 ‘둘리주택’ 등등 다양한 유형이 공급됐습니다.

▲아이부키가 성인 발달장애인들을 자립생활을 위해 지은 사회주택 ‘다다름하우스’

보린주택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다다름하우스

보린주택이 SH공사에 매각되면서 아이부키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공동체의 성장을 함께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았고, 지자체는 관리해야 할 주택을 떠맡게 되면서 행정적 부담이 점차 증가했습니다. 이 모델을 지속해서 확장하기에 어려움이 많으리라 판단한 아이부키는 사회적 경제조직이 개발 후에도 계속 운영주체로 남아있을 수 있는 모델을 구상하고 지속적으로 제안했습니다. 기획자가 건물을 짓고 운영까지 참여한다면 기획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구상은 2020년 LH공사와 진행하는 ‘안암생활’이나 ‘다다름하우스’ 같은 프로젝트로 실현됐습니다.

2020년부터는 LH도 사회주택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LH가 처음 시작한 ‘매입약정형 사회주택’이라는 모델은 민간이 주택을 짓고 공공이 매입해 운영하는 ‘매입임대’와 주택의 운영을 사회적경제 주체에 위탁하는 ‘사회적 주택’, 두 가지 별개의 사업을 하나로 통합한 모델입니다.

다다름하우스는 아이부키가 부지를 매입해 신축한 후 LH가 매입하고, 애초 기획 취지를 살려 아이부키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존 주택운영은 대개 시설관리에 중점을 두다 보니 거주하는 사람을 더 깊이 배려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부키는 발달장애 전문기관인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과 함께 해법을 고민해 왔고, 다다름하우스라는 모델을 통해 한 발짝 진보한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다다름하우스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목표로 하는 주거모형으로, 자립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공유공간이 여타 매입임대주택보다 훨씬 넓고 풍부합니다. 지역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도록 지역 공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일자리와 연계해 안정적인 정착과 커뮤니티의 지속성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보린주택에서 시작한 ‘맞춤형’ 임대주택은 우리사회에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나 덴마크 영국 같은 유럽 사회주택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집은 당연히 사람에게 맞춰야 합니다. 맞춤형 주택이 지방으로 더 많은 수요자에게로 더욱 확대되려면 양적인 실적 추구에만 매몰되지 말고 더 세심한 정책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

-글: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 | 사진: 아이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