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외톨이 청년을 세상과 연결하다

사회 곳곳에 ‘연결의 혁신가’들이 있습니다. 은둔 경험에 기반해 은둔고립 청년의 자립과 성장을 돕습니다. 안무서운회사의 유승규 대표의 글을 소개합니다.

6개월 넘게 대부분의 시간을 집이나 방안에서 보내며 사회적 관계가 결핍’된 상태를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국내에서는 은둔형외톨이라고 부릅니다. 서울시에서는 3년째 은둔고립청년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립과 은둔이라는 개념이 혼용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고립을 은둔의 전 단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일종의 스펙트럼 개념으로 사회적 관계가 결핍까지는 아니지만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고립과 은둔은 독립적인 개념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5개월간 고립된 사람을 은둔이라고 보지 않아 지원을 하지 않게 되면 결국 은둔으로 가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흡연자가 담배를 사러 외출했다고 해서 외출했으니 은둔이 아니라고 하면 또 다른 사각지대가 생깁니다. 소도시나 농촌에서 은둔 상태인 이들은 동네 주민들이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 누가 알아볼까 두려워 일부러 먼 곳에 있는 도서관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유승규 안무서운 회사 대표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어?

외출을 하더라도 그것이 ‘고립과 은둔을 지속하기 위한 외출’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외출 여부가 아니라 외출의 ‘성격’에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편의점에 가는 건 분명 외출에 속하지만, 물건을 구입할 뿐 점원과 사회적 관계를 맺지는 않습니다. 도서관에 가는 등 자신의 취미를 위해 외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사자가 사회적 관계를 가급적 줄이고 타인보다 내 삶을 우선순위에 두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관계가 ‘결핍’에 가까워 실제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고립될 것이고, 그 상황에서 무언가 삐끗하거나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면 제한적 공간에 틀어박히는 ‘은둔’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한때 일본에서는 병리적인 원인이 아닌 경우만 사회적 히키코모리로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평균 은둔 상태가 5년 이상이고 우리나라도 3년 이상이 많기 때문에 병리적인 이유로 은둔했는지 은둔하다가 병리적인 문제가 생겼는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과 일본 모두 병리적인 원인의 여부는 크게 따지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병원과 상담을 일종의 치부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진단을 받은 경우가 드물어 인과관계를 더욱 알기 어렵습니다.

개념 정의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은둔형외톨이는 전통적인 취약계층과 범주가 다르고 외견상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원 대상을 구분하고 예산을 투입하기 위해 행정적 차원에서 ‘정의’할 필요는 있겠지만, 모든 걸 자치하고 본다면 그들이 외롭고 사회적 관계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 합니다.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 삶 실태조사’와 2023년 청년재단의 ‘고립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립은 약 49만 명(4,7%), 은둔은 24만 4천 명(2.4%)에 달합니다. 은둔 상태의 청년은 전체 청년 인구의 3.1%가량 되고 연간 사회적 비용은 7조에 달합니다. 저출산과 더불어 큰 사회적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노년으로 갈수록 고립의 정도가 심화되기 때문에 청년들의 고립은 더욱 우려가 됩니다.

안무서운회사는 은둔고립청년들의 자립과 성장을 돕는 회사로, 실제 은둔 경험에 기반해 은둔고립 청년을 돕는 상담‧멘토링 프로그램 ‘은둔고수’와 세상과 관계 맺는 연습 공간인 셰어하우스 ‘안무서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힐링캠프, 치유연극 공연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은둔고립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리내어 말하고, 가족이나 친구와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안무서운회사에 문의하는 은둔고립 청년들 중에는 공통된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첫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은 “저는.. 집 밖에 아예 안 나가는 건 아닌데요”, “1개월에서 3개월 정도인데요”, “막 쓰레기를 쌓아놓고 살지는 않는데요”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다 흐느끼듯 토로합니다. “너무 힘들어요. 혼자서는 못할 것 같아요.”

언론과 각종 매체가 보여주는 것처럼 쓰레기 쌓인 집에서 게임만 하는 것이 히키코모리, 은둔형외톨이라는 인식이 당사자들에게도 뿌리 깊게 박혀있어 오히려 도움을 요청할 타이밍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방’의 숫자만큼 다양하고 유기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은둔청년의 자립을 위한 셰어하우스 ‘안무서운하우스’

왜 도와야 할까?

일본에는 ‘8050 리스크’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이 2010년 쯤이니 지금은 ‘9060 리스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대에 은둔을 시작한 자녀가 30년간 은둔해 50대가 된 상황을 말합니다. 그러다 부모가 사망하면 자녀 역시 공멸하게 되는데, 부모의 시체를 방치한 채 연금을 수령하거나 사회적 기술과 소통 능력이 너무도 떨어진 상태로 발견되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 농림수산성 차관이 아들의 은둔이 장기화되자 주변을 의식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까봐 살해했다는 사실이 국내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선 아직 30년 이상 은둔 사례가 포착되지 않은 것 같지만 15년, 20년에 가까운 사례는 저 역시 접하고 있습니다. 2023년 1년간 방문상담을 했던 당사자는 약 13년간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오랜 이야기 끝에 함께 외출해 지하철을 탔을 때 ‘10년 만에 타본다’며 지하철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는 10여 년 전 철도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했을 때가 마지막 지하철 탑승이라고 회고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20대 초반 청년이 5년 만의 외출에서 키오스크를 보고 압박감 때문에 한동안 무척 괴로워한 적도 있었습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집에 돌아가면 항상 설사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쩌다 히키코모리, 얼떨결에 10년>을 보면 저자가 오랜만에 외출하니 누군가가 편의점에서 커피를 좀 내려 달라고 했는데 그걸 못해서 울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은 수많은 문제와 두려움을 야기하고 가속화합니다.

▲은둔 청년들의 경험을 이야기한 콘서트 ‘꼭꼭숨었쇼’

취업에 실패해 은둔한다?

저 역시 과거에 5년간 은둔을 했습니다. 핵심적인 두 가지 이유는 유년기에 아버지가 유학생활로 인해 부재했다는 것과 가족 내 가부장적‧집단주의적 문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고립은둔 청년들에게는 IMF 사태 이후 가정이 붕괴됐다든지 하는 여러 고통의 서사가 있습니다.

흔히 은둔의 이유 1위가 취업 실패라고 하지만, 실제로 취업에 실패했다고 은둔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상황에서 터 놓고 상의하거나 가족들에게조차 이야기하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은둔은 ‘사회적 관계 자본’이 부족한 데서 비롯됩니다. 2023년에 국회에서 은둔 관련 토론회를 할 때 한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은 너무 빨리 성장해서 각 세대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200년에 걸쳐 이룩해야 할 사회적 변화가 너무 빨리 발생했다.”

이 말은 현재의 상황을 관통합니다. 이전 세대는 너무 힘들게 가족을 먹여살리고 본인을 몰아붙였기 때문에 일종의 ‘생존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면 안 돼” 하며 사회적 타임라인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불안감이 자녀세대에게 투영되어 실패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란 자녀세대는 남들이 대학에 갈 때, 결혼을 할 때 나만 혼자 그 속에 끼어있지 못하면 불안을 너머 수치심과 두려움까지 느끼며 결국 자신을 숨깁니다.

힘들게 살아오느라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상상력을 잃어버린 어른들, 그 안에서 힘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잃어버린 지금의 청년들. 우리에게는 지금 또 다른 상상력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의지박약한 청년들은 그냥 끌어내면 된다?

2008년 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 <흔들리는 도쿄>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모두가 히키코모리가 된 도쿄에 지진이 나서 모두가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지진이 끝나니 모두 집으로 돌아가 자기만의 방에 웅크립니다. 이 영화에서 알 수 있듯 물리적 강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한 단체에서 조사한 결과, 은둔을 극복했다고 보이는 사람들 중 80%가 “여전히 괴롭다”고 응답했습니다.

<흔들리는 도쿄>에서 결국 주인공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타인에 대한 걱정, 연민과 같은 감정적 교류였습니다. 결국 마음이 흔들려야 비로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글: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 | 사진: 안무서운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