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의 매력은 사람, 사람을 연결하는 스테이

전국 지역에서는 청년들이 일군 임팩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성장이 로컬의 변화로 이어지는 소셜디자이너들의 다채로운 활동과 이야기를 특집으로 전합니다. 오는 11월 14일 개최되는 청년 소셜디자이너를 위한 무대 ‘2024 사회적가치 투자(Social Investor Relations, SIR) 대회’에서도 생생한 임팩트 경험담이 펼쳐집니다.  

송효웅 ‘다음스테이’ 대표 | 전북 완주

전북 완주엔 뭔가 특별한 게 있습니다. 귀농·귀촌이 이어지고 사회적 경제나 여러 공동체들이 이 품에서 여뭅니다. 고산면엔 지역 협동조합이 힘을 합쳐 만든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1층은 협동조합 이장이 운영하는 카페와 공동체 공유주방인 모여라 땡땡땡, 2층은 ‘다음스테이’입니다. 2층 스테이 네 개의 방엔 완주 출신 일러스트 작가들이 잡아낸 고산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걸려있어요. 농사짓는데 다리에 엉기는 고양이들, 딸과 함께 바라본 만경강의 노을…

2년 전 서울에서 완주로 내려와 ‘다음스테이’를 운영하는 송효웅(36) ㈜작정 대표는 이곳을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고산판 ‘나는 솔로’ 캠프도 열고 ‘완주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도 꾸립니다. 스테이에 걸려있는 그림들도 연결의 결과물이죠. 건축을 전공한 그는 완주로 오기 전 도시재생 계획을 짜고 중간지원 역할을 하는 사회적기업에서 일하기도 했는데요. 그런 그도 ‘지역과 사람의 연결’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지난달 13일 ‘다음스테이’에서 만났습니다. 그가 완주로 온 이유도, 떠나지 않는 이유도 역시 사람이었어요.

▲ 송효웅 다음스테이 대표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건축을 전공하고 아파트 설계하는 회사에 1년 다녔어요. 아파트는 기업이 팔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거다 보니 사는 사람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건축이 뭘까 고민 하다 보니, 좋은 건물이 잘 운영되려면 좋은 사람들이 잘 써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러면 아예 건물을 만드는 단계부터 쓸 사람들이 같이 협의하면 어떨까? 커뮤니티와 건축을 연결하는 코디네이팅 일을 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후 도시재생 사업에서 참여디자인이나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을 했어요. 예를 들어 지하철 안내 사인을 디자인할 때, 외국인, 어르신 등 그룹 지어 인터뷰하고 의견을 반영하거나, 도시재생지역 주민들에게서 지역의 문제들을 들어보고 이를 반영해 사업 계획을 세웠어요. 서울, 익산, 사천, 시흥 등의 도시재생 계획 수립 때 참여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지역에서 주민들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계획 세우는 일을 하다 보니 지역과 좀 동떨어진 것 같았어요. 좀 더 깊숙이 지역에 들어가 활동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이직했습니다. 지역을 왔다 갔다 하며 4년 일했는데 행정에서 용역을 받아 하는 일은 지역에서 최소한으로 지내며 깔끔하게 끝내는 게 핵심이더라고요. 사업이 끝나고 지역에 뭐가 남는가 고민이 됐습니다. 지역에 가서 오래 일해 보고 싶어져 창업하고 이주했습니다.

-왜 완주를 택하셨어요?

=농림축산식품부 농정원(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 벌이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으로 완주에서 석 달을 보냈어요. 옥천, 완주, 제주 중에 고민했는데요. 완주는 활동하는 젊은 분들이 많았어요. 2000년대 초반부터 완주에 귀농·귀촌 인구가 쭉 있다 보니 사람, 공간, 시스템 기반이 잘 갖춰졌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어른들이 모여있다는 느낌이었어요. 다양성에 대한 수용이나 배려가 서울보다 더 좋은 것 같았어요. 새로운 청년들이 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랑 ‘별의별이주’ 프로그램으로 알게 된 12명 가운데 10명이 완주에 남은 것도 제가 이주를 결정하는 데 한몫했습니다.

석 달 살아보기가 끝나고 ‘농촌에서 살아보기’ 운영사였던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이하 ‘씨앗’)이 숙소를 운영해 보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우리가 만든 공간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거든요.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했어요. 저는 이 경험이 득이 되지 실이 되지 않을 거 같았어요.

-왜 득이 될 거라 여기셨나요?

=완주는 쌓아왔던 경험과 이야기가 있는 곳이에요. 이곳 협동조합 분들과 함께 할 때 얻을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숙소가 있는 이 건물도 지역자산화로 만들어진 성과이니 스토리도 충분했고요.


완주는 지닌 매력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어요. 도시재생사업하면서 저는 지역이 어떤 경험을 오랜 기간 쌓아왔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주 고산면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귀농·귀촌인구가 있었어요. 중간지원조직인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도 설립했고, 작은학교살리기 프로젝트로 삼우초등학교를 도시에서도 전학오는 학교로 바꾸었죠. 완주는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성공적인 농촌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경험이 충분히 쌓여있는 곳이었어요.

-농촌에서 살아보기 석 달 동안엔 무슨 프로젝트를 하셨어요?

=그때 당시 참여자였던 저희 부부 포함 네 명이 재밌게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했죠. 동네에 분식이나 일식집이 없었어요. 여기 공유주방이 있으니까 목요일마다 유부초밥, 메밀, 튀김 세트를 팔아보자! 그 실험으로 청년이 지역에서 식당 창업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뭔지 최소한의 기준을 정리해보자고 한 거죠. 일주일에 한 번씩 네 번을 했어요. 결과는? 4명이 식당 운영하면 안 된다! 읍내에서 좀 떨어진 동네이다 보니 고객이 딱 정해져 있더라고요. 하루에 평균 30명 정도요. 재료비, 공간대관비 등을 쓰고 수익을 나누니까 한 사람당 10만 원 가져가기도 어렵더라고요. 마지막 날엔 친구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장사를 접었거든요. 그때 못 판 유부초밥을 2주 동안 먹었어요. 한동안 정말 유부초밥은 다시 보기도 싫어졌어요.

-지역에서 숙소를 처음 운영해 보시는 건데 어떠셨나요?

=예약시스템을 만들고 가구 등 필요한 물품 들이고 지난해 3월 스테이 영업을 시작했어요. 물품 구입이나 인테리어는 사비 1000만원 정도 들였어요. 서울에서 일했던 경험 덕분에 지원사업을 받아서 테스트 프로그램도 해보고, 올해에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습니다. 가장 뿌듯했던 건 저희가 ‘다음스테이’에서 운영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3명이 완주로 내려오고 싶다고 한 점이에요. 사람이 있으니 사람을 모으기가 더 쉬운 거 같아요.

▲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수여식 ⓒ다음스테이

-살아보기 프로그램은 어떤 걸 하셨어요?

=보통 관에서 하는 귀농·귀촌 프로그램들은 일정이 꽉 차 있어요. 그러면 살아본 경험이 아니라 프로그램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저희는 로컬기획자의 초여름방학이라는 주제로, 최대한 일정을 비우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짰어요. 지역에 친구를 만드는 기회가 됐고 동네 구석구석 갈 수 있었다는 반응이 나왔어요. ‘째농’이라고 텃밭 가꾸는 분이 계시는데 텃밭 체험 핑계로 거기서 같이 새참 먹고 수다 떨고 그런 게 좋았다고 해요. 씨앗에게 듣는 완주 이야기, 산속에서 요가 명상하기.. 어떤 분은 전주에 북페어 다녀오시기도 하고요. 여기서 전주까지 차로 30분 정도 거리거든요. 가까이에 도시 생활권이 있어, 도시에 살던 친구들이 지역에 지내도 불편한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로컬기획자의 초여름방학 (결과공유회) 모습 ⓒ다음스테이

-친구들이랑 재밌는 작당을 많이 벌이시던데요.

=전통주 양조하는 친구, 기록과 북바인딩하는 친구 등 뭉쳐서 ‘고봉밥프로젝트’를 했어요. 여기가 고산이고요. 친구들은 봉동에 있는 청년셰어하우스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고봉’. ‘고봉’하니까 ‘밥’을 붙여야 할 거 같더라고요.


저희가 지난해 여름에 SNS나 블로그 하는 사람들을 모아 팸투어 형식의 캠프를 한 적이 있거든요.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원래 6시부터 시작했어야 할 행사를 밤 10시에 시작해 새벽 3시까지 했어요. 영화 ‘리틀포레스트’ 보고 수다 떨고 재밌었어요. 이걸 좀 더 체계화해 보기로 했죠. 완주군 DMO(지역관광추진조직)사업이 저희 숙소에서 워케이션 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한 번에 10여명 씩은 왔어요. 북바인딩, 막걸리 빚기도 같이 하고요. 첫 프로그램으로는 적자가 났어요. 그다음엔 적자만 보지 않을 수준으로 책정했어요. 만족도 조사에서 2박3일에 얼마면 좋겠냐 설문을 해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낮게 부르더라고요. 청년 대상 지역에서 벌이는 공짜 프로그램이 워낙 많으니까요.

올해에는 친구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솔로>에 빠져 그런 콘셉트로 캠프를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2박3일 커플매칭을 위한 ‘고봉밥레드’를 했어요. 여자 6명, 남자 6명 모두 12명이 왔어요. 밥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뭔가 프로그램을 계속 넣어야 했어요. 두 커플이 탄생했죠. 재밌는 건 이후에 이 프로그램 스태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난 점이에요. 참여는 어렵지만 직관은 꼭 해보고 싶다고들 하더라고요.

▲ 고봉밥캠프 모습 ⓒ다음스테이

-지원 사업의 장단점은 뭔가요?

=지원 사업을 집행하는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해봤고, 지원 사업을 받아보기도 했어요. 군, 귀농귀촌센터, 전북청년허브 등에서 지원을 받았죠. 지원금은 기한 안에 소진해야 하고 쓸 용도가 정해져 있어요. 제일 필요한 데 효율적으로 쓸 수 없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렇다고 없으면 아쉽고요.

-청년들이 지역에서 도전하는 데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지역에 내려오는 청년들은 대부분 창업이나 자기 콘텐츠를 실험하려고 해요. 취업 때문에 오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지자체는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떠나니 공장을 유치하자 이런 식으로 접근해요. ‘공동체 문화도시’인 완주는 청년이 실험하기 좋은 곳이에요. 공동체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모여서 스터디만 해도 비용을 지원해줘요.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많죠. 완주군에서 부족한 점은 그렇게 자기 색깔을 찾은 친구들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중간 다리가 빠진 점이에요. 청년들이 쉽게 만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네트워크나 전문가 컨설팅이 필요해요. 완주군은 계속 새싹만 발굴하는 거 같아요. 그 친구들이 2년 후에도 여기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완주에서 스테이 운영으로 생활유지는 괜찮은가요?

=숙소가 저렴한 비용으로 지역을 알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아직은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해도, 수익 면에선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서… 하지만, 삶의 전환 기회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시간을 주고, 저희도 친구들을 사귀니깐, 확실히 의미 있고, 재밌는 일인 것 같아요.

-계속 완주에서 사실 계획이신가요?

=아직도 테스트 중이에요. 완주의 장점은 사람인 거 같아요. 연결된 느낌이 좋아요. (비슷한 시기에 귀촌한 12명) 친구들하고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놀 수 있는 공간 하나를 임대했어요. 서울에서 맺은 관계랑 달라요. 좀 더 어렸을 때 친구들을 사귀는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근처에 사니 ‘이거 같이 하자’ 하면 바로 만나서 할 수 있고요.

떠날까 고민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완주의 색깔이 옅어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사회적경제 활성화가 목적이었던 소셜굿즈센터는 산업단지 육성이나 온라인 쇼핑몰 등을 개발하는 완주군 경제센터로 바뀌었어요. 완주군 부지에 있던 전환기술센터나 흙건축학교는 자리를 잃었고요. 전환기술센터는 용접, 목공 등 귀농귀촌하는 분들의 지역살이에 꼭 필요한 기술들을 가르쳐줬거든요. 여전히 완주군에서 활동하고 계시지만, 이러한 좋은 팀들이 완주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쉬워요.

-‘다음스테이’의 다음 목표는 뭔가요?

=단기적으로는 스테이의 수익을 안정화하는 거고요. 장기적으로는 지역에 정착하고 싶은 친구들이 인턴쉽으로 하루 몇 시간 일하며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어요. ‘다음스테이’가 하고 있는 지역과 사람의 연결이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방문객들에게 지역 정보를 쉽게 전하고 완주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요.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 사진: 다음스테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