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에 확성기 다는 ‘유희의 인간’

낮은 목소리에 확성기 다는 유희의 인간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

전북 김제에선 지평선을 볼 수 있습니다. 허허벌판 서부영화 속 풍경 같은 죽산면에 빵집, 자수공방, 와인바가 하나둘 들어섰어요. 최별 MBC PD가 폐가를 고쳐 5도2촌 생활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바람만 스치던 이곳이 입소문을 탔습니다. 최별 PD의 시골집은 책방 책밭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 죽산면에 지난해 11월부터 오호진(50) 사회적기업 명랑캠페인 대표와 박설인 (44) 도로시앤컴퍼니 대표가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스테이 두 곳을 쓸고 닦을 청소기를 들고, 사람들을 모아서 말이에요. 이 논과 밭, 아름답지 않냐고 옆구리 찌르면서.

▲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

지난달 19일 오호진 대표를 만난 날, 죽산면 빵집에 배우 이장우가 다녀갔습니다. “뭐라고요? 아~ 아쉬워라. 저 연예인 좋아하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뮤지컬 ‘덕후’였던 그는 15년 동안 영화, 공연 기획을 했는데, 52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말아톤>도 그가 속한 팀의 결과물입니다. “이 영화로 발달장애에 대한 관심이 확 일어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한이 없다” 싶을 만큼 일한 뒤 공연 기획사로 이직했습니다.

그곳에서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를 만났어요. 이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된 구스타보 두다멜도 총, 칼 대신 악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 내한 공연을 잇따라 열었어요. 그리고 엘시스테마가 왔죠. 이 오케스트라를 만든 호세 아브레오 박사도 초청하고요. 그 공연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떤 유명한 오케스트라 공연보다도 뜨거운 에너지가 있었어요.”

2011년 그는 희망제작소에서 열린 ‘소셜디자이너 학교’에 다니며 사회적기업의 개념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으면 병나는 스타일이라 이것저것 막 찔러봐요. 신기했어요. 누군가를 위해 일하면서 나도 같이 살 수 있다는 게.” 뒷풀이가 그렇게 재밌었다고 하네요. 택시 할증이 풀릴 때까지 놀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2013년 소셜벤처경연대회에서 상을 타고 2015년 1월 문화예술 콘텐츠로 변화를 모색하는 회사 명랑캠페인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유희의 인간이에요. 제가 만드는 캠페인이 재밌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아, 회사 그만두지 말 걸 하는 생각도 때때로 들죠.” 올해로 10주년, 그만큼 쉽지 않았어요.

‘입법 연극’, ‘명랑캠페인’의 첫번째 캠페인 목표는 확실했습니다. 2013년 그가 미혼모 거주시설 두리홈에서 워크숍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시도를 5년씩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두리홈 엄마들과 6개월 동안 30차례 만나면서 그는 이 이야기들을 묵혀둘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에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어요. 어린 엄마들 대부분 가정이 해체되거나 폭력 탓에 쫓겨나 살다 애정이 고파 아이를 갖게 됐더라고요. 그렇게 저출산이 문제라고 난리 치면서 (미혼모를 차별하는 건) 앞뒤가 안 맞죠. 미등록이주아동들한테 주민등록 안 주는 상황도 이해가 안 돼요.”

입법 연극 ‘미모되니까’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엄마들이 직접 배우가 됐습니다. 연극이 끝나면 토론이 벌어졌어요. 관객이 무대에 올라 엄마들 자리에 서보았습니다. 미혼 엄마들의 독백을 담은 뮤직토크쇼 ‘모(母)놀로그’도 올렸습니다. 의자 세 개 놓을 곳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 공연했어요. 연극을 보러온 국회의원들한테 한부모 관련 법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받자마자 말 바꾸지 못하도록 보도자료로 뿌리고 영상도 만들었습니다.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그리고 미혼한부모 당사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공청회, 국회를 “미친 듯이” 찾아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2017년 한부모가족 지원이 국가의 의무란 점을 강조한 한부모가족지원법 일부개정, 2018년 양육비 긴급지원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양육비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을 이끌어냈죠. “아, 나 정말 할 일 다 했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보호시설에서 자라 만 18살에 홀로 서야 하는 청년들과의 인연은 이듬해 한 의뢰로 시작됐습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한 회사 소이프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응원하는 ‘꽃길만’ 콘서트를 열어달라고 했어요. 2013년 그가 어린이 재활병원 모금콘서트를 벌일 때 만난 가수 션이 나서줬습니다. 뮤지컬 배우들을 대거 섭외했죠.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그의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얘네는 잘못이 없는데. 그냥 눈 떠봤더니 시설에서 크고 있는 건데. 어른으로서 미안하더라고요. 그 아이들의 외로움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어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자기는 엄마가 원래 매해 바뀌는 건 줄 알았다고요. 안쓰럽지만 그런 마음은 안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우린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70년대생과 2000년대생으로 만나려고 한 거예요. 너네는 내 어린 친구들이라고요.”

지난 6월 그의 생일, 청년들은 장수를 기원하며 홍삼, 소금, 기름을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그의 남편은 이렇게 놀렸어요. “그 친구들은 너를 어르신이라고 생각해.” 홍삼이 필요한 나이가 된 그도 2022년 아버지가 숨진 뒤 “자신이 막 안쓰러웠다.” “이 나이에도 이런데… 아이들 마음이 더 느껴지더라고요.”

2020년부터 명랑캠페인은 ‘비바씨’ 캠페인을 벌입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홀로 세상에 떨어진 씨앗” 같아 이탈리아어로 만세(viva)와 영어 씨앗(seed)을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인스타그랩 웹툰 <독립, 만 18세>에 자립준비청년들의 독립생활 분투기를 담았습니다. 분리수거에도 서툰 18살들이 대출서류 작성법부터 배워가며 대환장 이사를 하고, 자립지원금 500만 원을 아끼며 온갖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대학을 졸업합니다.

‘뜨루’는 체불임금 600만 원을 받는 데 1년 반을 보내고 “쓰레기 더미”같은 집에 살았습니다. ‘알로’는 사랑에 빠졌죠. ‘비바씨’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자립준비청년이 일상을 직접 담은 ‘비바로그’도 올렸습니다. 곧 보호시설에서 나가야 하는 예비 ‘비바씨’들이 “엄청난 용기를 얻었다”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성공했을까요? 매출로는 실패였습니다. 조회수, 구독자수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어요. “영화 일을 해서 유튜브도 잘할 줄 알았는데 새로운 세상이더라고요. 그래도 이 프로젝트들 덕분에 아이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어요.”

이 경험은 캐릭터 사업(링크)으로 이어집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을 모델로 비비, 바바, 씨씨 캐릭터를 만들어 액세서리, 가방 등 상품을 제작했습니다. 동시에 이 캐릭터들과 연결해 자립준비청년들과 책모임, 공연 모임을 꾸렸어요. 그가 캐릭터 사업에 열을 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립준비청년 72명의 주택청약통장과 디딤씨앗통장에 매달 5~15만원씩 보태고 있어요. 10개 도시 그룹홈에 음악교육도 벌이죠.

캐릭터 상품 가운데 하나인 암막 우산을 펼치면, 김제 평야를 배경으로 캐릭터 ‘씨씨’가 웃고 있습니다. 그는 2023년 11월 최별 MBC PD와 자립준비청년 관련 다큐를 논의하다 김제에 처음 왔어요.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논밭에 푹 빠져버렸어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어? 기획자의 일은 누군가를 빛내주는 거잖아요. 이 보석 같은 지역을 알려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더라고요.”

사회적기업 명랑캠페인의 오호진 대표를 만났습니다.
▲ 박설인 도로시앤컴퍼니 대표와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

그렇게 박설인 도로시앤컴퍼니 대표와 죽산포레스트 스테이 2곳을 운영하며 ‘영감여행’을 꾸렸습니다. 온갖 비타민을 털어먹고 새벽 5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김제에 도착하자마자 청소하고, 2박3일 동안 기사이자 여행가이드이자 요리사가 됐죠. 그사이 김제의 매력도 계속 발굴했어요. 죽산면 젊은 사장님들과 관광객들이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연결하고, 벽골제에서 요가도 했습니다.

20대 문화기획자, 음악가, 디자이너들로 이뤄진 영감여행단은 그냥 놀다 갈 수 없었어요. 김제에서 받은 영감으로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김제를 담은 노래, 디자인이 나왔습니다. 암막 우산도 그 가운데 하나죠. “저희 20대 직원이 강력하게 제안하더라고요. 젊은이들은 네트워크를 꾸리고 한정된 시간 안에 자기 포트폴리오에 더할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한다고요.” 과연 논밭이 통할까? 사람들이 왔어요. 영감여행을 7차례 벌였습니다.

영감여행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는 일이었어요. 여행객당 10만원 씩 받아서는 두 사람 인건비는커녕 난방비와 교통비, 식비를 대기도 부족했습니다. 그렇다고 요금을 올리기에 논밭으로는 한계가 있었죠.

“죽산면엔 저녁에 할 게 없어요. 그래서 논밭 걷기를 많이 하고 일찍 자게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어요.”

지역의 지원을 받기도 어려웠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정부 지원이 대폭 준 데다 사업 지원 대상도 청년이나 지역민 중심이었거든요. 4도3촌 삶은 힘에 부쳤습니다. 주7일 근무가 이어졌죠. 지난해만 해도 그는 김제로 이주할 계획이었습니다. 남편은 퇴사까지 했어요. 그런데 포기했습니다. “캐릭터 사업이나 행사 기획 관련 일이 서울에 몰려 있고 직원들도 서울에 있으니까요. 이주했다가는 월급도 못 주겠더라고요.”

영감여행은 다른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사비를 털었어요. 자립준비청년 18명은 공짜로 김제 죽산면에서 2박3일 쉬고 놀았습니다. 그가 이 버전의 영감여행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은 이런 장면 때문입니다.

그가 점심값을 내고 동네 어르신들이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해 밥을 차려줬어요. 20~25살 청년들은 할머니 손을 잡고 팔짱도 끼었습니다. 밥을 배 터지게 먹은 청년들은 말했어요. “할머니, 저 여기서 좀 잘게요.” 그는 “돈을 잘 썼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 명랑캠페인이 기획을 맡은 나비남 영화제 현장

이렇게 돈을 쓰고도 명랑캠페인은 10년 동안 적자 낸 적이 없습니다. 토크콘서트, 뮤지컬, 지역축제, 기념일 등 기획으로 수익을 올렸어요. 환경미화원 안전 캠페인, 고독사 위험군에 속한 50대 독거남들의 ‘나비남 영화제’ 등 작은 목소리에 콘텐츠로 확성기를 다는 일도 계속했습니다. 그 사이 웹툰 속 상처 많은 ‘뜨루’는 일하는 동안 생각이 사라지고 퇴근하자마자 잠이 드는 물류회사에서 일합니다. ‘알로’는 결혼해 아버지가 됐습니다. 그도 청년들도 쉽지 않았지만 “잘 버텨냈습니다.”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사진: 명랑캠페인, 희망제작소

*몽덕 대장은 이날 김제 평야에서 엄청나게 짖었답니다. 인터뷰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방해라니. 생각해 보면 방해가 대장의 특권인 거 같기도 하고요. 남해로 이사 온 몽덕 대장은 모래사장을 달리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그리고 이제 경남 남해 상주면에 있는 은모래마을책방의 인턴이 되어 손님들을 쫓아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