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지난 7월 13일 <서울시 동북4구 100인 회의>가 열렸습니다. 서울 동북부에 있는 4개 구(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성북구) 주민 100명이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네 구가 협력할 방법을 찾는 토론회였습니다.

지난 후기는 토론을 하게 된 배경과 내용,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이번 기사는 토론회 설계과정과 평가를 소개하고 향후 주민참여 방법 발전에 참고할 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해외의 다양한 주민참여 방법 사례 검토

토론회를 설계하기 앞서 국내?외 다양한 주민참여 방법을 조사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주민참여 방법으로 ‘주민참여예산제’가 있습니다. 1989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라는 시에서 시작한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광주광역시 북구를 시작으로 많은 지자체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지방예산편성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예산 범위나 운영 방법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미국의 타운 미팅(Town Meeting)도 유명한 시민참여 방법입니다. 식민지 시대 마을공동체 의사결정방식인 타운미팅에서 유래하였는데, 오늘날 아메리카스픽스(America Speaks)라는 단체에서 시민 목소리를 직접 정책결정자들에게 전하기 위한 대규모 토론방법으로 발전시켰습니다. 9?11 참사 후 ‘그라운드 제로’의 재건축 방향을 주제로 한 토론 ‘Listening to the city’, 허리케인 카타리나로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즈 재해 복구를 주제로 한 ‘Rebuilding New Orleans’등에 활용되었습니다. 이 토론방식은 국내에서도 소개되어 서울시 복지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1000인의 원탁회의’, 대선을 앞두고 열린 ‘정책만민공동회’ 외에도 많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에서 이 방법으로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보다 큰 규모의 시민참여 토론회로 독일의 뷔르거포럼이 있습니다. 2011년 독일 사회의 통합을 주제로 전국 25개 지역에서 시민 400여명이 6대 주제별로 토론회를 열고 이를 방송으로 생중계 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제안을 온라인에서 투표한 후 대통령과 지역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토론하고 ‘시민 리포트’를 발간했습니다.

캐나다의 뷰포인트 러닝(Viewpoint Learning)이라는 기관에서 개발한 초이스워크(Choice work)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임의로 추출한 40명 정도의 표본 시민들이 만나 장시간 정책에 대해 숙의하는 방법입니다. 공공정책 결정에서 어떤 선택을 할 지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을 때 사용한다고 합니다. 또, 미국 퓨처 서치(Future Search) 프로그램은 3일 동안 40명 ~ 80명이 현재 직면한 문제점과 이상적인 미래 시나리오를 탐색하고 이를 위한 액션플랜을 도출합니다. 이 외에도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유럽연합의 시민 대화(Citizen’s Dialogue) 등 정책에 주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전 세계의 시민참여방법 사례를 모은 웹사이트 ‘파티시페디아(Participedia)’를 참고하면 다양한 사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사용자

동북4구는 여느 지방자치단체보다 주민참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노원구와 도봉구는 각각 타운미팅 방식으로 주민 300인을 초청하여 원탁회의를 했고, 성북구는 작년에 이어 올해 8개 분야별 ‘열린토론회’를 진행했습니다. 동북4구가 함께 ‘사회적경제 열린토론회’도 개최했습니다. 이들 토론회에서 제안된 주민 의견을 바탕으로 <서울시 동북4구 100인 회의> 프로그램을 설계했습니다.

프로그램 설계

어떤 토론회가 좋은 토론회일까요? 무엇보다 쓰임에 맞는 토론회여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 동북4구 100인 회의>는 동북4구 발전연구단이 연구에 참고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전문가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문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아래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했습니다.

1) 주민 목소리를 빠짐없이 담는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주민의 생생한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한다.
2) 숙의형 토론: 서로의 의견에 살을 덧붙여가며 토론에 깊이를 더한다.
3) 준비된 토론자: 주민이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해 구체적으로 토론하도록 한다.

토론 설계는 기존에 희망제작소가 해 온 마을 만들기 주민 워크숍, 문화예술 사회적경제인들의 토론회 ‘별별솔루션’등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또, 토론자가 테이블별로 앉아 논의를 하되, 모든 주제를 구성원이 공유할 후 있도록 ‘월드카페’ 형식도 차용했습니다. (월드카페란 같은 주제에 대해 소그룹으로 토의를 하고, 그룹원들이 테이블을 이동하여 모든 토론내용을 전체가 공유하는 방법입니다.)

”사용자

준비된 토론자

동북4구에 대한 기본정보와 토론 방법을 담아 사전 자료집을 만들었습니다. 참여한 주민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미리 송부하고 토론 전에 충분히 숙지하도록 당부했습니다. 토론회 참여자 상당수가 자료집을 읽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전자료집에는 토론 주제가 담겨있습니다. 토론 주제를 정하기 위해 이 지역 주민이 가장 관심을 갖는 문제를 조사했습니다. 동북4구의 민원과 주민제안, 토론회 의견을 모아 분류한 결과 다섯 분야(‘지역경제와 일자리’, ‘복지와 교육’, ‘문화와 환경’, ‘공동체’, ‘도시경관 디자인’)와 50개 주제를 선정하였습니다.

토론 진행 방법

테이블 14개 위에 논의할 의제 2~5가지를 놓아두었습니다. 참여자는 의제를 보고 자신이 토론하고 싶은 테이블을 정했습니다. 한 테이블에 4~8명까지 주민이 앉았습니다. 테이블에는 ‘테이블 진행자(퍼실리테이터)’가 토론을 이끌었습니다. 자기소개 후 놓여있는 의제 중에 토론할 주제를 정했습니다.

의제를 정하면 먼저 ‘지금 이 의제가 어떻게 문제가 되고 있는지’ 사례를 들어 말했습니다. 그 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포스트잇에 적었습니다. 전지를 반으로 나눠, 왼쪽에는 ‘문제점’을, 오른쪽에는 ‘원인분석’을 논의한 포스트잇을 붙여두었습니다.

”사용자

문제점과 원인을 분석한 뒤 해결책을 토론했습니다. 테이블 구성원들이 제안한 모든 문제를 듣고 난 후 비슷한 유형끼리 묶었습니다. 이 중 가장 좋은 제안에 스티커를 붙여 2~3가지를 뽑았습니다. 선정된 제안은 모두가 공유하는 시간에 발표되었지만 나머지 제안도 빠짐없이 보고서에 담겨 연구 자료로 쓰이게 됩니다.

테이블마다 2가지 의제를 뽑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문제점과 원인을 진단한 후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이 내용을 프레지에 담아 사회자가 발표하는 방법으로 공유했습니다.

테이블 진행자

토론을 원활하게 할 진행자를 테이블마다 배치했습니다. 테이블 진행자는 모든 사람이 골고루 말하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토론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사람이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희망제작소의 각 센터 연구원과 동북4구 연구진이 맡았습니다. 테이블 진행자는 사전 교육을 통해 동북4구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 진행을 연습했습니다.

테이블 진행자가 전문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견해를 개진해선 안 됩니다. 지역에서는 공무원이 테이블 진행자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이 때, 예산이나 법령을 고려했을 때 주민이 실현 불가능한 의견을 개진한다 하더라도 ‘이건 안 됩니다’라고 단정해 버려서는 안 됩니다. ‘된다, 안 된다’는 판단을 떠나 일단 자유롭게 주민들이 창안하도록 합니다. 만약 현실화하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추려내는 작업은 토론 이후에 할 일입니다.

“좋은 분들 만나서 소통하는 장이 되어 좋았습니다.”
“시간이 짧아서 주제별로 의견을 나누기 힘들어 아쉬웠습니다.”
“참여한 분들과의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을 나눈 분들과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 모이는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을 듯합니다.”
“보다 다양한 형태의 세미나, 포럼, 공청회, 토론회를 기대하며 참여하는 주민들의 인력 풀을 구축해 주세요.”
“동북4구 회의에 참석한 토요일 오후는 값진 하루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우리 지역의 발전과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주민 분들의 열정도 함께 하니 감동도 받았습니다. 좋은 결과를 얻고 수확할 때까지 더욱 노력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토론회가 끝나고 참여자들이 남긴 의견입니다. 토론회의 가장 큰 성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입니다. 주민이 살며 체험한 지역의 현실과 문제는 여느 전문가나 행정가의 연구보다 상세하고 간절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토론자들이 한 주제를 두고 토론을 하다 보니 여러 주제에 대해 논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시간이 더 길었다면 주제를 넘나들며 토론 내용을 공유하는 방법을 모색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대안이 합쳐져 더욱 창의적이고 실현 가능한 제안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주민참여 방법에 대한 제언

<서울시 동북4구 100인 회의>는 지자체나 마을 단위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요즘엔 아파트에서 할 사업을 주민이 직접 논의하는 ‘오픈 컨퍼런스’를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참고 : 뿌리공부방 후기 _ 똑똑 도서관 김승수 관장 뿌리공부방)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참여에 관심을 가지면서 의견을 수렴하는 행사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주민 제안을 모아도 실행할 지 말 지는 행정의 선택에 달렸다는 점입니다. 주민의 제안이 반영되기 어렵다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우려도 있습니다. 따라서 첫째, 주민 제안을 실현시킬 절차를 확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산의 일정 부분을 주민이 직접 조정할 수 있는 주민참여예산제가 좋은 예입니다.

둘째, 주민이 제안을 내고 직접 실행 할 주체가 되도록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토론회에서 주민참여 행사에 대해 ‘관이 프로젝트의 주인이고 주민은 거기에 동원될 뿐’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지자체장이 바뀌거나 예산에 따라 사업이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 주민은 시간과 열정을 들여 참여 하지 않을 것입니다. 행정의 변화에 좌우되지 않도록 주민 주도로 제안을 실현시켜 나갈 모임을 만들고 추진할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셋째, 지속적으로 의견을 개진 할 통로가 필요합니다. 한 번 이벤트는 비용도 만만찮고 소요되는 행정력도 큽니다. 행사를 하고 나서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논의를 숙성하고 현실화 시킬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넷째, 다양한 층위의 주민참여프로세스가 필요합니다. 활동가 차원에서는 더 지속적이고 깊이 있게 구정에 참여하길 원합니다. 한편 시간을 내기 어려운 구민은 너무 자주 참여해야 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참여의 정도를 달리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잘된 점도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이번 토론회를 통해 주민참여 방법의 개선방향에 대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앞으로 주민참여 방법을 개발하고 실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글_ 우성희 (뿌리센터 연구원
sunny02@makehope.org)
사진_ 윤승민 뿌리센터 인턴연구원

#

관련글

주민의 목소리를 들어라
– 주민참여 …

머리 맞댄 300인의 시흥 시민들

서울시 동북구민 100인은 왜 한자리에 모였나